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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속의 휴식과 고향을 느낄 수 있는 - 산성동 행정복지센터

 

꿈과 희망이 있는 미래도시 중구

동행정복지센터안내

우리동현황

산성동은

충남 금산군과 경계로 농촌과 도시의 복합형이며 산서지역은 옛부터 대대 손손 농업을 주로 삼고 강한 애착심을 갖고 부모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세대가 많아 효의 원천이 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주민편익시설로 농산물유통센터, 대전동물원, 효의 상징인 뿌리공원과 효문화마을이 위치하고 있어 전국에서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지역특성

충남 금산군과 경계로 농촌과 도시의 복합형이며 산서지역은 옛부터 대대 손손 농업을 주로 삼고 강한 애착심을 갖고 있으며 보문산을 중심으로 마을이 위치하고 있어 전원적인 지역으로 온순하고 온화한 성향을 띠며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세대가 많아 효의 원천이 되고 있음 행정관할 구역은 중구 전체 면적의 67%로 사정 안영 지역은 토지구획정리사업 개발과 농산물유통센터, 대전동물원 개장으로 행정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안영·침산동에는 효의 상징인 장수마을과 뿌리공원이 위치하고 있어 전국에서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음 구완동은 포도농사로 년간수입이 가구당 2∼3천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음.

동현황

(2019. 8월말 현재)

동현황
면적 인구수 세대수 주민조직 관할법정동
41.54㎢ 28,492명 12,564세대 54통 250반 산성동, 사정동, 안영동, 구완동, 목달동, 무수동, 어남동, 정생동, 침산동, 금동
  • 전통행사
  • 동명유래
  • 산성동 하늘아래 근심없은 마을 무수동(無愁洞

    천신제(天神祭) 달집태우기 / 문화체육부 등록 『한국의 전통마을』- 1996년 무수동 천하마을은 삼신산(三神山)인 봉래산(蓬來山) 운람산(雲嵐山) 방장산(方丈山)이 있고 오룡(五龍)이 여의주를 희롱한다는 명당이 있다는 마을로 천하태평하게 수백년 천제를 지내며 살아온 선비마을에서 고증(考證)을 거친 천신재(天神祭) 달빛 태우기를 재현하여 마을의 풍요와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를 한다. 300여년전 대사간 권기 선생이 마을 이름 무쇄글을 무수동(無愁洞 근심없는 마을)으로 고치고 호를 무수옹(無愁翁) 이라고 지었다. 무수동 천하마을에서 살아온 선비 인물은 고려말 이부상서(吏部尙書) 이춘계(李春啓), 형조전서(刑曹典書) 임건, 조선초 좌의정(左議政) 이명덕(李明德), 조선중엽 대사간(大司諫) 권기, 좌찬성(左贊成) 권유(權惟), 호조판서(戶曹判書) 권이진(權以鎭), 이조말에 호조참판(戶曹參判) 권영수(權永秀)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등이 있어 이 고장을 빛냈다.

  • 무수동 천하마을 천신제 달집 태우기 행사
    • 일시 :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
    • 장소 : 대전광역시 중구 무수동 무수 천하마을 지정장소(우남들 중앙)
    • 내용 : 달맞이, 천신제(달집 태우기), 풍물놀이, 쥐불놀이, 음식나누어 먹기
    • 주관 : 무수동 주민
    • 찾아오시는 길 : 대전동물원 입구에서 3㎞지점 정생동 침산동 갈림길에서 좌회전 300m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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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성동(山城洞)은 당대(당디)가 중심마을이었다. 그 뒤 일제 강점 아래 대전의 시세가 확장됨에 따라 대전부에 편입되면서 산수의 경치가 뛰어난 곳이라 하여 산수정(山水町)이라 부르다가 조국 광복후 왜식동명을 없애라는 행정지시에 따라 산성동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부르게 된 것이다.
  • 사정동(沙亭洞)은 옛날 사기점(沙器店)이 있어서 사정(沙亭)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와 함께 마을 어귀에 큰 반송이 서 있으며 모래수렁이 있었던 마을이라 사정이라 부르게 됨
  • 안영동(安永洞)은 금산군과 시의 경계를 동쪽으로는 침산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사정동과 접했고 서쪽방향에는 서구의 복수동, 괴곡동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본래 바깥길이 아닌 안길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안(安)-길(永) 동네에서 유래 되었다는 설과 함께 양반들이 정착해 살면서 평안한 영세를 누렸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는 안영동은 원안영, 도장골, 새동네, 신봉 검바우, 부흥동, 창명, 새뜸, 성산주막거리, 겸나무 주막거리 등의 마을로 구성되었다
  • 구완동(舊完洞)은 보문산 안쪽으로 깊은 골짜기에 있어서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피난온 사람은 모두 완전히 피해없이 잘 살았으므로 처음에는 완전(完全)이라고 부르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 그 후 정유재란 때 여기 완전 남동쪽 4㎞ 지점의 소호동의 아늑한 산골에서도 피난온 사람들이 모두 안전하게 피난하였으므로 이곳도 완전이라고 부르게 됨에 따라 그 지명을 구분하기 위해서 임진왜란 때 피난처였던 이곳은 구완전(舊完全)이라 부르고 정유재란 때 피난처였던 소호동은 신완전(新完全)이라 부르게 되었다
  • 무수동(無愁洞)은 무쇠가 나는 지역임으로 무쇠골, 수철리라 불렀는데 조선시대 숙종때 대산간 권기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그의 호를 무수옹(無愁翁)이라하고 또한 그가 사는 마을을 무수리라고 부르던 것이 연유되어 그리 부르게 되었다.
  • 침산동(砧山洞)은 방아와 같은 두 봉우리의 방아미 즉 침산이었으므로 옛날부터 방아미, 침산이라고 불러왔었다.
  • 목달동(木達洞)은 보문산 남쪽 산 높이 249m의 남달산 아래 지역에 있으면서 마을에 해 묵은 박달나무가 하나 있으므로 목달이라 불렀었다.
  • 정생동(政生洞)은 옛날 유명한 지관이 여기를 지나다가 산세를 보고 정승이나올 지역으로 꼽았으며 또한 옛날 우봉 이씨가 정승을 그만 두고 여생을 보낸 지역이기도 하다. 이 부근에 남생바위로 부르는 바위가 있어서 남생골이라 부르다가 변하여 정생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일설도 있다.
  • 어남동(於南洞)은 산 높이 413m의 만인산 서쪽에 있는 느나미 즉 어남산 아래 있는 산골 두메가 되므로 느나미 또는 어남이라고 불렀다
  • 금동(錦洞)은 아늑한 지역임으로 금댕이 또는 금동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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