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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영산김씨

  • 작품명

    永山金氏淵源

  • 조각가

    김 철 이 報恩承旨公派22世孫 (찬미미술원 성림조각회장)

  • 이미지
  • 작품설명

    조선조의 대학자요, 팔대문장가(八大文章家)인 김수온 (金守溫)은 창공에 높이 솟은 문필봉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하여 작품에 문필봉을 상징화 했음. 아무리 뛰어난 예지와 상념일지라도 실천이 있어야 진가가 발휘된다. 손은 실천을 상징함과 동시에 전진을 상징했음. 월인천강지곡은 불후의 대작이요, 명작임을 손을 들어 대중에게 과시하고 있음. 후면의 학은 현실세계와 이상세계를 조화하여 영원히 발전해 가는 영산김씨의 미래상을 상징화 했다.

  • 유래

    영산김씨(永山金氏)의 원조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이고 신무왕의 후손이다. 나, 여(羅, 麗) 양조에 걸쳐 출사입공해 오던중 고려말의 전객시령공이 영이(令貽)는 쓰러져 가는 고려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전력했으나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사직. 낙향할제 두 아들과 세 사위도 사직하고 영동(永同)으로 은거했다. 장자 판도판서 길원(吉元), 차자 판삼사 포(苞)와 장서 이부시랑인 순천박공 원용(元龍), 차서 한성판윤 구례장공 비(丕), 삼서 대제학 밀양박공 시용(時庸) 등 이상의 어른들은 여조에 벼슬했고 장서했다. 신왕조 조선이 개국되자 비로소 출사 했으니 종경(宗敬)은 우천성을 이르렀고 이어서 아들 훈(訓)은 영의정이요 그 아들 수온(守溫)은 당대의 대학자요 이조 팔대 문장가로 많은 시문과 저서가 있었고 벼슬은 판서 대제학 영중추 부원군에 이르렀다. 특히 저서 월인천강지곡은 불후의 명작이다. 이하 후손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명인 달사가 많았지만 다 기록하기 어렵고 임정요인으로 조국독립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만리이역에서 서거한 김철(金澈)의 유해가 아직 환국을 못한 것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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