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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청주이씨

  • 작품명

    생명의 등불

  • 조각가

    이상필

  • 이미지
  • 작품설명

    작품 상단에는 등불·해·일출·사람의 조형적 형태를 새겨 영원한 생명의 등불처럼 꺼지지 않고 자손의 영원한 번창함을 기원하는 의미를 부여하였고, 중앙에는 사각기둥 두 개를 세워 한국의 건축 양식과 처마선 형태를 좌우측에 세워 한국적인 미를 가미하였다. 본 작품은 현대적인 미를 수직적 구도로 구상하여 먼 거리에서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청주이씨 가문을 상징하기도 한다.

  • 유래

    ▸ 청주이씨(淸州李氏)는 시조(始祖) 태사(太師) 이능희(李能希)공이 고려(高麗) 개국(開國)에 참여하여 공신(功臣)이 되고 성(姓)을 받은 이래 6세(世)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공승(公升)에 이르러 크게 빛났다. 공승의 큰 아들 춘로(椿老)는 참지정사(參知政事)였고 둘째 아들 계장(桂長)은 문하시랑동평장사(門下侍郞同平章事)였다. 그 이후로 현상양좌(賢相良佐)가 배출되어 고려 말에 9세 창우(昌祐)의 큰 아들 계감(季瑊)은 낭성군(琅城君)에 봉해졌고, 둘째 아들 차감(次瑊)은 개성 이씨로 분관(分貫)했고, 셋째 아들 계성(季珹)은 보은백(報恩伯)에 봉해졌다. 계감의 큰 아들 정(挺)은 서원백(西原伯) 문간공(文簡公)이었고, 둘째 아들 방직(邦直)은 진현관(進賢館) 대제학(大提學)이었다. 계성의 큰 아들 송고(松固)는 판도판서(判圖判書)였고 둘째 아들 방고(芳固)는 행중낭장(行中朗將) 판도판서였다. 정의 큰 아들 유신(由信)은 형부낭중(刑部郎中)이었고, 둘째 아들 거인(居仁)은 검교좌정승(檢校左政丞) 공절공(恭節公)이었고, 셋째 아들 거의(居義)는 공조전서(工曹典書)였고, 넷째 아들 거이(居易)는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을 거쳐 영의정(領議政)에 오르고, 문도공(文度公)이었다. 문도공의 큰 아들 상당군(上黨君) 애(薆)는 이태조(李太祖)의 부마(駙馬)였고, 넷째 아들 청평군(淸平君) 백강(伯剛)은 태종(太宗)의 부마였다.
    청주이씨는 지금까지 약 천백년 동안 수많은 명신, 충신, 효자, 학자 및 기업인 등 각계각층의 인재를 배출하여 국가사회에 공헌한 바가 크다. 특히 효종(孝宗) 연간에 족보(族譜)를 매우 일찍 간행하여 숭조(崇祖)와 종족간 화합에 힘썼고, 현재 후손이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살고 있다. 이러한 번영은 조상의 음덕(蔭德)에 힘입은 바 큰 것이고, 이후에도 더욱 발전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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