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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양주조씨

  • 작품명

    충효단忠孝壇

  • 조각가

    이영섭

  • 이미지
  • 작품설명

    이 충효단忠孝壇은 양주조문楊州趙門이 배출한 충절忠節과 효자孝子를 표현한 상징물이다. 국력國力이 약했던 근대 한국 대한제국大韓帝國이 1905년 일본국 日本國에 의하여 강압적인 방법으로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대한제국 원임의정 대신原任議政大臣 충정공忠正公 조병세趙秉世선생이 충정공 민영환閔泳煥선생 등 문무백관文武百官을 거느리고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반대하며 을사오적을 처형하고 조약條約을 파기토록 고종황제高宗皇帝께 상소하였으나 비답批答이 없고 일본군헌병日本軍憲兵에게 저지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자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황제皇帝께 상소하고 국민과 주한 각국 공사에게 호소문을 남기고 순국殉國한 선열先烈의 뜻을 국민國民들이 알아야 할 한국韓國의 근대사近代史를 작품에 담은 것이다.

  • 유래

    ▸ 양주조씨(楊州趙氏)의 근원지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북구 번동인데 선계(先系)는 실전되어 상고 할 길이 없다. 시조(始祖)로 모시는 조잠(趙岑)은 고려(高麗)때 양주호장(楊州戶長)을 지내고 판중추원사를 증직받은 판원사공(判院事公)인데 조지말(趙之末)의 후손으로 군우(君佑)의 손자 경질(景質)의 아들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양주조씨는 판원사공 1세조 잠과 2세조 호판공 인필(仁弼) 3세조 서운관정공(書雲觀正公) 의(誼)로 3대에 이르기까지는 독신으로 선계(先系)가 이어 왔으나 서운관정공 조의(趙誼)는 고려조충신(高麗朝忠臣)으로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맏이가 정평공(靖平公) 조계생(趙啓生)이 이조판서 예문관 대제학, 강화공(江華公) 조유중(趙惟中)이 강화부사 불가(佛家)로 귀의한 조설우대사(趙雪牛大師), 문강공(文剛公) 조말생(趙末生)이 영중추원사 예문관 대제학, 제학공(提學公) 조종생(趙從生)이 병조참판 제학을 지냈는데 5형제의 아들중 문강공 말생(末生)의 후손이 가장 많이 번성하여 양주조씨(楊州趙氏)중 다수의 후손인구를 이루고 있다. 정평공(靖平公)은 아들 병조판서 극관(克寬), 평안도관찰사 수량(遂良), 제학공(提學公)은 아들 병기녹사 번(藩)과 손자 계동(季同), 향동(香同), 귀동(貴同) 등이 조선(朝鮮) 단종조(端宗朝) 계유정난(癸酉靖難)때 목숨을 잃어 후손의 인구가 적다. 양주조씨(楊州趙氏)는 조선조(朝鮮朝)에서 문과급제 97인, 무과급제 71인, 생원진사 244인, 상신(相臣) 8인, 대제학 5인, 인조장열왕후(仁祖莊烈王后)를 배출하고, 국구 1인, 의빈 2인, 청백리 1인, 충절 13인, 효열 32인, 재상급 26인을 비롯하여 천여명의 관료가 나온 조선시대를 통하여 명문벌족(名門閥族)으로 이름을 얻은 가문(家門)으로, 특히 1905년 대한제국(大韓帝國)때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반대 상소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순국(殉國)한 원임의정대신 충정공(忠正公) 조병세(趙秉世)선생은 양주조문(楊州趙門)의 명예를 선양한 인물(人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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