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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무주김씨

  • 작품명

    덕유산의 기상

  • 조각가

    김명석

  • 이미지
  • 작품설명

    이 작품은 무주김씨의 시조 김성이 무주백에 봉해짐에 본관이 무주가 된 것을 착안하여, 무주 덕유산의 높고 험한 기상과 문중의 번영과 화합을 상징하는 의미로 음과 양, 남과 여, 인간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중앙에는 유래문 판을 책의 형상을 두어 문과장원급제에 대한 표현을 하였다. 하부에는 계단 3단을 두어 조상에 대한 존중과 존엄성, 경건함을 갖게 하고자 했다.

  • 유래

    무주김씨(茂朱金氏)는 조선초기 고관(高官)의 씨족으로 충(忠)과 의(義)와 효행(孝行)의 전통이 빛나는 학자의 가문(家門)이다.
    중시조(中始祖) 성(晟)은 고려 말 공민왕조에 등과하여 국자감 제주(祭酒)를 역임하였으며, 조선이 개국한 후 벼슬이 보문각 대제학(大提學)에 오르고 태종 대왕으로부터 무주백(茂朱伯)에 봉(奉)해졌다. 이때부터 후손들이 茂朱를 본관(本貫)으로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世 생려(生麗)는 부제학(副堤學)에 올랐으며, 3世 규(葵)는 세종조에 예조판서를 거쳐 홍문관 대제학으로 대광원윤(大匡元允-크게 바르고 올바름의 으뜸)이란 칭예(稱譽)를 얻었다.
    선지(善之)는 집현전 교리(校理)로 18학사와 함께 종사하며 문종으로부터 어린 단종의 뒷일을 부탁 받은 고명대신(顧命大臣)으로서, 후일 사육신(死六臣)등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병자사건에 연루되어 감(堪), 선지(善之), 한지(韓之), 유인(有仁)이 함께 참형을 당하는 멸문의 화를 입었다. 이로 인하여 가족들은 고향인 수원 북쪽 청룡산(靑龍山) 아래 벽계동(碧溪洞)에서 화를 피하여 충청도 내포지역(內浦地域)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
    12世 석여(錫汝)는 충청지방의 저명한 성리학자로 존경을 받았고, 14世 광찬(光纘)은 효행으로 정조대왕으로부터 효자집안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받았으며, 19世 사구(思九)는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로 이름을 날리는 등 대대로 충절과 의리, 효행을 실천하고 학문(學文)에 정진하는 가문(家門)의 전통(傳統)과 명예(名譽)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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