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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남양방씨

  • 작품명

    화합(和合)

  • 조각가

    이순덕

  • 이미지
  • 작품설명

    남양을 본관으로 둔 방씨는 중국(요나라) 단주에서 한반도(고구려) 남양에 정착하여 위훈미덕으로 계승발전과 번창을 주제로 공간성을 강조한 문(門: 개선문)을 형용하고, 한쌍의 학(鶴)의 형상을 모티브로 현대적 기법인 기하학적 대칭 안정미를 조형적으로 형상화하였다.

  • 유래

    방씨의 유래는 요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양을 받은 순임금이 요임금의 아들 휘 단주(丹朱)를 방국(房國)에 봉한 후, 단주의 후손들이 국명인 房을 성으로 삼았다. 남양방씨의 비조(鼻祖)는 휘 유애(遺愛), 자 준(俊)이시다. 비조 방준은 唐 太宗을 도와 이른바 ‘정관(貞觀)의 治’를 이루신 문소공 휘 현령(玄齡)의 아들로서 서기 643년 고구려 보장왕때 서달 등 8학사의 한분으로 동래(東來)하여 남양(南陽)에 정착하셨다. 시조(始祖)는 고려 개국에 참여하여 개국공신의 반열에 오른 휘 계홍(季弘)이고, 비조의 10세손이다. 방씨는 고려조에서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보국, 금자광록대부 등 중추를 담당하였고, 통훈대부 방사량(士良)은 공양왕께 시무11조를 올려 시국의 폐단을 바로잡고자 하였으며 의서 향약집성방 저술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조선조에서도 방귀온(貴溫)은 조광조에 의거 현량과에 천거되어 참신한 인재등용문을 열었고, 방응현(應賢)은 조식과 이항 등과 교류하며 백성을 위한 학문과 교육에 힘쓴 일민(逸民)으로 남원 유천서원에 배향되었다. 방명달(明達), 명선(明選), 원진(元震), 원정(元井), 원량(元亮)과 그 외 여러분들이 병란에 의병을 모집하여 결연히 싸웠고 방원진은 시조 애련곡(愛蓮曲)도 남겨 남원시민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방씨는 한림공파 등 7파로 분파되어 전국에 3만여 명이 살고 있으며 비조의 사우와 시조이하 9위의 합동봉사단을 화성 마도면에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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