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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소주가씨

  • 작품명

    소주가씨

  • 조각가

    라인철

  • 이미지
  • 작품설명

    역사적으로 볼 때 소주가씨는 나라의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개개인의 안위나 가문의 안위 보단 충절을 지키기에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 절개를 보여주었다. 이에 그 조상의 모습 속에 담긴 충절의 모습을 주제로 대나무의 상징인 절개, 인내, 충절의 뜻을 담고 후손들이 그 조상의 얼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대나무 어린 죽순에 긴 의미를 형상화 하였다.

  • 유래

    중시조 가유약(賈維鑰)은 명(明)나라 신종(神宗)때 서기1592년(선조26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황명병부랑중겸감찰사(皇明兵部郞中兼監察使)로 명군을 이끌고 조선에 파병 안주, 남원, 동래 등지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1595년에 귀국하였다. 1597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아들인 유격장군(遊擊將軍) 가상(賈祥) 손자인 병부종사관(兵部從事官) 가침(賈琛)과 함께 다시 파병되었다. 가상(賈祥)은 소사평(素沙平)전투에서 승리하였으나 동래에 이르러 적에게 전사하고 아들을 구하려던 가유약도 부산전투에서 전사, 1598년(선조32년) 부자가 애통하게도 순국(殉國)하였다. 손자 가침(賈琛)은 경남 울산 서생진 도독동에 조부와 부의 장례를 모시고 머물다가 이후 아들 가성(賈晟) 형제들과 충과 효의 예를 다하기 위해 귀국을 하지 않고 고국과 가까운 태안반도로 왔으며 이 곳에서 귀화 정착 하였으니 3대(代)의 출정(出征)이야말로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그 유래가 없는 충효의 전형이었다. 후세에 조정에서 이충일효(二忠一孝)의 공을 인정하여 1851년(철종2년)에 사우(詞宇)와 정문(旌門)이 하사되어 충남 태안군 남면 적돌길 415번지에 숭의사(崇義祠)를 건립 매년 음력 10월 14일 대제를 봉행하고 있으며, 그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하여 1988년 8월 30일 충청남도 지방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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