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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서림서천이씨

  • 작품명

    번영의 빛

  • 조각가

    이선영

  • 이미지
  • 작품설명

    휘 언중 중시조의 충의정신과 충절을 근원으로 하는 문중의 기상을 서주를 중심에 음각으로 형상하여 상징하였다. 仁, 德, 義, 忠의 정신을 4개의 삼각형 빛으로 표상하여 번성과 번영의 의미를 담았다.

  • 유래

    우리 이씨의 관향은 원래 西林인데 고려 후기 西川로 승격되고 조선 초기에 지금의 舒川으로 개칭됨에 따라 각 문중에서는 오래전부터 본관을 서림 또는 서천으로 각각 달리하고 있어 종중차원에서는 서림·서천으로 병서하고 있다.
    우리 始祖는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휘는 益存, “흥록대부정원공신”이시며 시호는 文忠公이시다. 가승에 의하면 뒤를 이어 대대로 고려 조정에 출사하시어 명문(名門)으로 내려 오셨다.
    우리 中始祖로 받드는 분은 고려 후기의 공신으로 휘는 彦忠 시호는 忠敬公이시다. 충렬왕 때에 국자감시에 장원으로 벼슬길에 오르셨다. 뒤를 이은 충선왕은 元의 부마로서 元의 서울인 연경에서 5년간 전지(傳旨)만으로 고려를 다스렸다.
    中始祖는 당시 조정의 중신으로 연경에서 내려오는 왕명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왕이 없는 조정을 흔들림 없이 잘 지킨 큰 공으로 충숙왕이 “西林君 사람 李彦忠이 충선왕에게 공이 있어 知西州事”로 승차시킨 사실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충숙왕 또한 한때 元에 의하여 5년간 연경에 볼모되어 있는 동안 고려 조정은 혼란이 지속 되었다.
    中始祖는 중추원의 여러 중신들과 함께 혼란한 조정을 안정시키는 한편 元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충숙왕을 환국케 하는 데 큰 공을 세우셨다. 이에 도첨의 정승에 오르시기까지 고려 후기 누대에 걸친 국정혼란을 극복하는데 忠義一念으로 헌신하셨다. 이에 “단성수의동덕보리공신” 과 “西林君”의 칭호를 받으셨다.
    中始祖의 이와 같은 秉義盡忠精神을 높이 받들고 있다. 조선조에 와서는 8世 휘 興儀(부여현감)의 단종에 대한 절의(節義)와 13世 휘 成臨 (광양현감) 3父子의 정유재란시 순절(殉節), 15世 휘 日三(대제학)의 뛰어난 문필(文筆), 17世 휘 鳳鳴(증예조참의)의 신임사화에 대한 직소(直訴)등은 우리 宗史의 자랑이다. 그 밖에 많은 先祖들이 조정에 출사하기 보다는 절의와 학문을 숭상하면서 고고(孤高)한 선비의 길을 걸어오셨다.
    先祖들이 물려 주신 仁·德, 義·忠 정신을 이어받아 권세와 재물 보다는 분수(分數)를 지키며 정의롭게 살아가는 우리 門中의 융성을 염원하며 이 비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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