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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청주경씨

  • 작품명

    화합과 번영의 노래

  • 조각가

  • 이미지
  • 작품설명

    청주경씨 문중의 강직한 성품을 내명의 직선으로 상징화하고, 화목한 문중의 아름다운 마음들을 외부의 흐르는 듯 감싸 안은 유연한 선의 흐름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서로 조화롭게 화합하는 문중의 기운이 상승 발화하여 번창하기를 기원하며 노래하는 모습의 조형상이다.

  • 유래

    청주경씨는 羅末麗初에 청주의 유력한 豪族으로 세거하여 왔음을 청주 용두사지 철당기의 기록으로 알 수 있으며 경씨가 고려초 청주의 土姓으로 분정되어 있음을 세종실록지리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백년간 史實과 年代가 역사에 빠져 있어 상고 할 수 간에 새겨져있다. 그로부터 수백여 년 간 史實과 年代가 역사에 빠져 있어 상고 할 수가 없으며 고려의 종조에 청주사심관을 거쳐 명종조에 匡靖大夫中書侍郞平章事를 지낸 慶珍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 아들 慶大升은 명종조대장군으로 무신들이 반역하여 조정을 장악국권을 농락하고 있을 때 분연히 의거하여 역신들을 주살조정을 위난에서 구하면서 국권이 손안에 있음에도 부친이 별세하자 전 재산을 군부에 헌납하고 왕이 내리는 承宣 벼슬도 사양하여 오직 사직과 백성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애쓰다 삼십세 젊은 나이에 병사한 청년 충신 장군이다. 그 후 삼십여년간 다시 世系가 분명치 못하여 고려 고종조 戶部尙書平章事를 지낸 慶蕃을 一세조로 하여 繼代하고 있다 . 경씨의 本貫을 청주로 하게 된 것은 시조를 비롯하여 누대에 걸쳐 土城으로 살아 온 발상지가 청주이고 四세조 慶復興이 고려말 壁上三韓三重大匡門下侍中을 지내고 貞烈의 시호와 淸原府院君의 작호를 받은 데서 비롯 되었다. 청주경씨는 五세조 慶儀가 태종조 청백리에 녹선된 것을 본받아 후손들의 稟性이 淸直하고 崇祖睦族의 정신이 지극한 單性單本의 명문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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