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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옥천육씨

  • 작품명

    우리는 하나

  • 조각가

    조인혁

  • 이미지
  • 작품설명

    옥천육씨의 시조 4인 덕곡공, 공주목사공, 순찰사공, 낭장공의 형상을 기리기 위한 형상이며 4인의 인체를 모티브한 강강수얼레의 형태로 육 씨의 단합된 모습과 후손들의 화합과 안녕을 염원하는 뜻으로 제작했다.

  • 유래

    沃川陸氏의 시조 관성군 육보(陸普)께서는 중국 후당(後唐) 명종 때 선공(宣公) 육지(陸贄)의 후손으로 절강성 소흥부에서 태어났으며, 신라 경순왕 원년 927년에 왕명을 받고 문학전례지신 팔학사의
    수장(首長)으로 이 땅에 와서 학문과 예절을 가르쳐 명망이 높기에 경순왕이 총애하여 부마(駙馬)로 삼고 관성군(管城郡)에 봉하니 그 후손들이 관성에 살게 됨으로써 우리 육씨의 관향(貫鄕)이 되었다.(관성은 옥천의 옛 지명)

    고려 충렬왕 때 1世 인단(仁端)은 벼슬이 주부(主簿), 2世 희가(希賈)는 검한성(儉漢城), 3世 거원(巨遠)은 중낭장(中郎將)이 되어 세계(世系)를 이어 왔으며, 그의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명성을 떨치고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

    장남 덕곡공 려(麗)는 5도관찰사(장수 압계서원 유림에서 봉향),
    차남 목사공 항(沆)은 공주 목사, 3남 순찰사공 비(埤)는 경상도 순찰사, 4남 낭장공 수(綏)는 이조참판이 되었고, 5남 태귀도 일품관 一品官이 되었으나 후손이 없으므로 번성한 4형제들의 별호와 직함에 따라 4파조(四派組)로 분파하여 세거(世居)하게 되었으며, 근세에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로 인하여 우리 가문이 더욱 널리 알려지고 후손이 번창하고 있음은 선대들의 유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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