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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기계유씨

  • 작품명

    천년의 문

  • 조각가

    고재선

  • 이미지
  • 작품설명

    본 작품은 기계유씨 가문의 충절과 중용, 청족의 선비 기품을 이어온 문중의 역사를 조형적으로 연출하였다. 두 개의 좌우측 조형은 만남과 화합, 문중의 단합된 힘을 형상화하였고, 작품 중앙의 열린공간은 선대로부터 후세에 이르기 까지의 소통을 의미한다.

  • 유래

    기계유씨(杞溪兪氏)는 신라 때 아찬(阿飡)을 역임한 유삼재(兪三宰)부군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그 후손 유의신(兪義臣)이 신라를 멸망시킨 고려조(高麗朝)에 불복하자 태조가 미워하여 기계현(경주에 속한 현)의 호장(戶長)으로 좌천시켰다. 후손들이 그곳에 살면서 본관(本貫)을 기계로 하였다. 기계유씨(杞溪兪氏)세거지인 경북 포항시 기계고현에 시조 유허지(遺墟地)가 있다.
    기계(杞溪)는 본래 신라의 모혜현(芼兮縣)인데, 경덕왕(景德王)때 기계현으로 개명하여 의창군(義昌郡)이 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 경주군(慶州郡)에 속했다가 후에 폐현(廢縣)이 되었고, 현재는 영일군(迎日郡)에 편입되었다가 경상북도(慶尙北道) 포항시(浦項市 북구(北區)로 편입되어 기계면(杞溪面)이 되었다.
    그 후 기계유씨는 월성군파(月城君派), 동정공파(同正公派), 주부공파(主簿公派), 탐진공파(耽津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판사공파(判事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부제학공파(副提學公派),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 처사공파(處士公派), 석청공파(石淸公派), 신계공파(新溪公派), 단성공파(丹城公派), 충목공파(忠穆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자산공파(慈山公派) 등 열여섯 지파(支派)로 갈라져서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기계유씨(杞溪兪氏)는 호장공(諱 義臣)공 이래 벼슬에 뜻을 두지 않는 까닭에 고려전기에는 여러 대체로 은둔 생활을 했다. 고려후기에 이르러 그 후손의 일족이 경기도 남쪽지방에 이주하면서 다시 벼슬에 뜻을 두어 득선(得瑄, 좌복야), 선(僐, 봉익대부판도판서), 석(碩, 사헌시사), 승계(承桂, 봉익대부판도판서) 3대가 크게 현달하여 기계유씨(杞溪兪氏)는 다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석(碩)이 아들 보(寶, 탐진군), 승계(承桂)가 아들 천경(千慶, 전서), 성리(成利, 군기시판사), 성보(成保, 부정), 성복(成福, 판사재감사) 등 4형제를 두어 번창하기 시작했다.

    조선조에는 수많은 분들이 가문을 빛냈으며 85명의 문과(文科), 45명의 무과(武科), 288명(생원시 98명, 진사시 190명)의 소과(小科)급제자와 90여명의 음관(蔭官), 3명의 상신(相臣) 등을 배출하였고 구한말(韓末)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는 개화의 선구자 구당 유길준(吉濬), 광복 후 새 정부의 헌법을 기초한 현민 유진오(兪鎭午)는 의절(義節)의 가문(家門)인 기계유씨를 더욱 빛냈다.
    198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기계유씨(杞溪兪氏)의 인구는 남한(南韓)에 97,382명, 2000년 113,430명, 2015년에는 139,073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가들은 부디 선조의 유지(遺旨)를 받들어 충효정신을 새기고 실천하며 이 곳 공원에 모셔진 각 문중과 함께 인류공영(人類共榮)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다짐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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