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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무안유씨

  • 작품명

    무궁한 번영의 무안유씨

  • 조각가

    이진자

  • 이미지
  • 작품설명

    무안유씨의 무궁한 번영과 문중간의 융합된 상징을 지구형태로 구상하여 상단에 배치하고 빛나는 조상의 얼을 널리 알리고자 스테인리스 재료를 선택하여 태양광선과 소통할 수 있는 조형의지를 담고자 함.

  • 유래

    무안유씨(務安 兪氏)는 순직(舜稷) 장사군(長沙君)을 시조로 하고 있다.
    순직(舜稷)은 고려 예종 때 삼중대광검교소부감(三重大匡檢校小府監)을 역임하고 공훈으로 장사군(長沙君)에 봉하여짐으로써 후손이 장사(長沙)를 본관으로 하였다. 그 후 장사군(長沙君)의 증손 천우(千遇) 문도공(文度公)은 희종5년(1209)에 출생하여 고종 때 문과에 급제 이부시랑(吏部侍郞) 좌우승선(左右丞宣) 정당문학(政堂文學)을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누진되고 충렬왕 때 원(元)나라의 하정사(賀正使)로써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하여 국위를 선양한바 있고 기타 많은 공로로 무안부원군(務安府院君)에 봉(封)하여졌다. 이를 계기로 본관을 무안(務安)으로 하게 되었고 충렬왕2년(1276)에 별세한 후 공에게는 문도(文度)의 시호(諡號)가 내려졌으며 2007년에 고려 충․공신(忠․功臣)으로 고려대전(高麗大殿)에 배향됐다. 공의 증손 천(蕆) 송은공(松隱公)은 충숙왕9년(1332)송경에서 출생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예의판서(禮儀判書)로 누진 되었다. 고려가 망한 후 태조 이성계가 등극 (登極)하여 조선 예조판서(禮曹判書)직을 제수(除授)하였으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이를 고사(固辭)하고 은거(隱居)함으로써 망국의 애절함을 “귀산사십운(歸山詞十韻)”에 남겼으며 태종원년(1401)에 별세하여 1814년 고려충신 사우(祠宇)인 송산사(松山祠)에 배향되었다. 공의 증손인 희익(希益) 역암공(易菴公)은 1456년에 문과에 급제 유학(儒學), 역학(易學)의 대가로 가정대부(嘉靖大夫)행성균관대사성(行成均館大司成)이 제수(除授)되고 역학(易學) 성리학(性理學)에 정통하여 정무에 기여한바 지대하였다. 공의 증손(曾孫) 세호(世豪) 우산공(牛山公)은 문과에 급제 사인(舍人) 전한(典翰)을 역임하고 가선대부(嘉善大夫)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에 누진했으나 당쟁파화(黨爭派禍)로 불안한 정세에 후손들의 피해를 우려하여 각각 분거(分居)시켜 공의 장남인 여옥(汝沃)은 영남지방으로 낙향하였으나 후예(後裔)의 존재가 불명하며 공의 차남인 여정(汝貞) 홍은공(洪隱公)은 예문관응교(藝文官應敎)직을 역임한바 있으나 연산정난으로 지금의 홍성지역인 홍주(洪州)로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전념하고 후손이 번창하여 홍은공(洪隱公)의 장남 장(璋)의 후손은 보령파(保寧派)를 이루고 차남 침(琛)의 후손은 청양파(靑陽派)를 이루었으며 우산공(牛山公)의 삼남인 여흡(汝洽)의 후손은 양주파(楊州派)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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