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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금산김씨

  • 작품명

    웅비(雄飛)

  • 조각가

    김 지 삼 (한국조각가협회이사)

  • 이미지
  • 작품설명

    두사람의 인체에 직선과 곡선을 사용한 것은 강함과 부드러움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서로 화합하고 단결을 나타내며 두팔을 크게 벌림은 금산김씨(錦山金氏)의 자손들이 힘차고 용기있게 나가 세상을 표용함을 나타내며 삼각형구도를 이루는 것은 안정속에 금산김씨(錦山金氏)의 자손만대로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를 나타냄.

  • 유래

    시조 김신(金侁)공은 신라 경순왕의 제4자 은열(殷說)공의 제15세 손으로 자(字)를 윤직 호(號)를 낙천제(樂天齊)라 하며 고려 고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좌정언(司諫院左正言)을 거쳐 원종8년 정묘(丁卯 1267年)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갔다가 원제로부터 정서대원수의 대임을 받아 만노(萬奴)의 여환(余患)을 제하고 또 강서인주적(江西 鱗州賊)을 토평한 공으로 금자광록대부 요양성참정(金紫光祿大夫 遼陽省參政) 에 제수 되었다. 원종11년 경오(庚午)에 귀국하니 공이 재원시에 국가를 위하여 공헌한 바 크므로 공의 고향인 진예현(進禮縣)을 금주(錦州)로 승격하여 금주군(錦州郡: 現錦山)에 봉(封)함으로 본관(本貫)을 금산(錦山)으로 정하였다.
    계유(癸酉)에 상장군 평장사(平章事)에 임명되어 하절사(賀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오고 갑술(甲戌)에 좌군사(左軍使)로 중군사 김방경(金方慶)과 왜국정벌 (倭國征伐)에 참전 하였다가 일기도(一岐島)에서 전사(戰死)하니 시호(諡號)를 충간공(忠簡公)이라 하고 칙명(勅命)으로 사당(황풍사)을 세우고 향사(享祀) 케하여 리명(里名)도 황풍리라 칭한다. 또 무주 유림이 죽계서원에서 향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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