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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충주/홍주석씨

  • 작품명

    영원(永遠)한 가족(家族)

  • 조각가

    김학제 (동아대학교 예술대학교수)

  • 이미지
  • 작품설명

    굳건한 주춧돌의 상징인 세 기둥과 이것을 화합하는 삼각형의 화강석 위에 어깨동무하고 있는 인물과 불꽃의 정동조각을 배치하여 영원히 발전하는 성씨(姓氏)의 미래를 조형화 하였다.

  • 유래

    시조 석린(石隣)은 중국에서 고려로 와서 의종 경인란(1170년)과 명종 병신란(1176년)을 평정한 공으로 성장군에 올라 예성군(蘂城君)에 봉해졌다. 그후 봉군지(封君地) 예성(현:충주)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6세(世)는 양선(良善)이요 배(配)는 영흥 최씨니 영흥백 정효공(靖孝公) 한기(閒奇)의 따님이며 이태조대왕의 이모(姨母)이다. 태조가 생후 5개월만에 어머니(의혜왕후)를 잃고 이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태조가 왕위에 오르지(1393년)이모부 석양선을 홍양부원군, 이모 최씨를 경창옹주에 봉하였고 7세 중랑장 석천을에게 '동유형제의 여산여해은'(同乳兄弟誼 如山如海恩)이라는 어필(御筆)을 내렸다. 8세 수명과 여명 두형제 중 형 수명은 한성판윤으로 조부 홍양 부원군을 딸 관향을 홍주로 분관하였으며, 동생 여명(汝明)은 관향을 충주로 계속 이어왔다. 여명의 호는 화원(花園)이며, 공민왕23년(1374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문하주서였으나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벼슬을 버리고 두문불출하니 태조가 여러번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으며, 그후 태종 16년(1416년) 왕지로 한성윤 집현전제학(漢城尹 集賢殿提學)에 임명하였으나"고려의 신하로서 조선왕조를 섬길수 없다"라고 불응하니 태종이 진노하여 충주 차의산 회문동에 귀양보내니 그곳에서 종신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태종은 후회하며 "한점 부끄럼없는 높은 지조를 갖춘 훌륭한 충신"이라며 좌찬성에 증직하였다. 우리는 이 높은 충절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가에 충성하고 정의를 지향하여 나라발전에 기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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