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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벽진이씨

  • 작품명

  •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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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설명

  • 유래

    벽진장군(碧珍將軍) 이총언(李悤言)은 벽진이씨(碧珍李氏)의 시조(始祖)다. 신라말(新羅末) 벽진군(碧珍君)을 다시리고 있을 때 도둑의 무리가 충척(充斥)하였으나 벽진장군이 성(城)을 튼튼히 하고 굳게 지킴으로서 백성(百姓)들이 평안하였다. 이에 고려 태조(太祖)가 사람을 보내 함께 협력하여 화란(禍亂)을 평정(平定)하자고 효유(曉諭)하니 벽진장군(壁珍將軍)이 글을 받고 매우 기뻐하며 아들 영(永)으로 하여금 병사(兵士)를 거느리고 태조(太祖)를 따라 정토(征討)에 임(臨)하게하니 그 때 영(永)의 나이가 십팔세(十八歲)였다. 이를 착하게 여긴 태조(太祖)가 이대광사도귀녀처지(以大匡思道貴女妻之)하고 이총언(李悤言)을 벽진장군(碧珍將軍)으로 배(拜)함과 동시(同時) 방읍(傍邑) 이백이십구정호(二百二十九丁戶)를 가사(加賜)하고 또 충주(忠州) 광주(廣州) 죽주(竹州) 제주(堤州)의 창곡(倉穀) 이천이백석(二天二百石)과 소금 일천칠백팔십오석(一天七百八十五石)을 주고 그 위에 친서(親書)로 금석(金石)과 같은 신의(信義)를 보이면서 자손(子孫)에 이르기까지 이 음 변치 않으리라 하였다.
    벽진장군(壁珍將軍)은 이에 감격하여 군정(軍丁)을 단결(團結)하고 군량(軍粮)을 저축(貯蓄)하여 고성(孤城)으로, 신라(新羅)와 후백제(後百濟)의 필쟁지지(必爭之地)에 있으면서 흘연(屹然)히 동남(東南)의 성원(聲援)이 되었다.
    고려 태조(太祖) 이십일년(二十一年.938年)에 돌아가시니 향년(享年)이 팔십일세(八十一歲)였으며 아들은 달행(達行)과 영(永)이시다. 이로 인(因)해 본관(本貫)을 벽진(碧珍)으로 하여 자손(子孫)들이 세계(世系)를 계승(繼承)하여 오면서 역대현조(歷代顯祖)가 문한(文翰)과 도의(道義) 혹(或)은 충절(忠節)과 청백(淸白)으로 전통을 연면(連綿)히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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