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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설치문중/유래

선산(일선) 김씨

  • 작품명

    和合·發展·繁榮

  • 조각가

    신동일

  • 이미지
  • 작품설명

    전체적으로 산(山)의 형태를 조형화 했으며, 그 위에 종중의 상징마크를 떠 받치고 있는 형상으로, 善山(一善)金氏의 상징성을 표현했다. 앞면에 오석판으로 종중의 유래가 음각으로 새겨지고 뒷면에는 명판이 새겨진다.

  • 유래

    ▸ 선산(일선) 김씨의 시조는 순충공(順忠公) 선궁(宣弓)이며 고려때 고려 개국벽상공신삼중대광(高麗開國壁上功臣三重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일선(선산의 옛 이름) 백(伯)에 봉록을 받게되어 선산(일선)이 관향이 되었다. 시조 순충공의 첫 이름은 선(宣)이었으며 신라 대보공 김알지공(金閼智公)의 30세손이며 신라 46대 문성왕의 8세손이며 경순왕의 삼종질인 체의공(體誼公)의 아들로 경북 선산군 해평면 낙산동 부근에서 태어나시었다. 고려 왕건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하려고 일선군(선산)에 머물 때에 신라 김씨 왕손으로 왕건 태조를 도와 15세의 어린 나이에 자원 종군하여 큰 공을 세우니 왕건 태조가 크게 기뻐하여 친히 자기 활을 하사하시고 이름을 선궁(宣弓)이라고 내려 주셨다. 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워 삼한통합익찬공신(三韓統合翊贊功臣)에 책봉되었으며 고려 정종 원년 서기 945년에 대승(大丞)으로 추증하고 순충(順忠)이라 시호하시었다. 공이 말년에 관직을 떠나 고향 선산에 낙향하시어 터를 닦고 지내면서 군 청의 청사에 대지로 사용하게 된 것이 지금도 비봉산(飛鳳山) 아래 봉하루 (鳳下樓)터와 군민이 공의 덕을 추모하여 사당을 세우고 향화를 올렸다는 진민사(鎭民祠)터가 있고 선산김씨유허비각(善山金氏遺墟碑閣)이 있어 천년이 지난 지금도 후진들의 교육의 장으로 빛나고 있다. 시조 순충공의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 미석산(慶北 龜尾市 海平面 金湖里 彌石山)에 모시었으며 매년 음력 10월1일에 향사를 지낸다. 그 후 후손들이 번창하여 고려조를 지키려고 충절을 지킨 두 충신(二忠), 충개공 김제(忠介公 金濟),충정공 김주(忠貞公 金澍)와 조선조의 훌륭한 다섯 선비, 세종때 이조판서를 지낸 문정공 김효정(文靖公 金孝貞), 성리학맥을 이은 문강공 김숙자(文康公 金叔滋), 사림파의 종주로 성종때 형조판서를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문충공 김종직(文忠公 金宗直), 중종때 좌의정, 우의정을 지낸 문대공 김응기(文戴公 金應箕), 명종, 선조때 東人의 영수 김효원(金孝元), 호조판서와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로 일본을 다녀와 “해사록”을 남기고 “반계수록”을 쓴 유형원의 스승인 문강공 김세렴(文康公 金世濂)을 배출한 집안으로 아래와 같이 18개 종파를 이루어 지구촌 각지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여 훌륭한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善山(一善)金氏는 백암파(白巖派), 농암파(籠巖派), 문대공파(文戴公派), 간의공파(諫議公派), 화의군파(和義君派), 낭장공파(郎將公派), 취수공파(醉睡公派), 송천공파(松川公派), 성암파(省庵派), 소암파(素庵派), 곤육재파(困六齋派), 대장군파(大將軍派), 우윤공파(右尹公派), 양양공파(良襄公派), 정조공 파(正朝公派), 강호파(江湖派), 과당공파(苽堂公派), 점필재파(佔畢齋派)의 18개 분파로 나뉘어 면면이 이어 내려오는 빛나고 명예로운 가문으로 동조동근(同祖同根), 세수돈목(世守敦睦)을 고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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