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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조형물설치문중/유래

양주최씨

  • 작품명

  • 조각가

    김지삼

  • 이미지
  • 작품설명

    두 사람이 서로 팔을 높이 펼쳐 웅비하려는 모습을 형상화하여 양주최씨 종문의 무궁한 화합과 번영 그리고 전진을 추구함.

  • 유래

    ▸ 양주최씨는 소벌도리공(蘇伐都利公)에서 원류(源流)하여 문경공(文敬公) 휘(諱)억(億)이 고려조에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내고 태사(太師)에 올라 공민왕2년 서기 1353년 양주군(楊州君)에 훈봉(勳封)되어 양주최씨의 시조가 되었다. 시조로부터 4世까지 고려조에 상서(尙書), 판서(判書), 전서(典書)에 올랐다. 5世 집의공(執義公) 항(沆)에게 두 아들이 있어 큰아들 6世 문정공(文靖公) 정안(井安)이 조선조에 한림(翰林), 정언(正言)을 거쳐 대사헌(大司憲)을 지내다 단종복위 운동으로 순절하니 그의 아들 용(溶)이 황해도 안악(安岳)에 은둔하였으며, 후손들이 아홉종파(翰林·判官·通政·三水·高山·萬戶·判決事·參奉·白川公派)를 이루었다. 작은아들 6世 군수공(郡守公) 정연(井涓)은 김제군수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담(潭)이 난세를 피하여 경기도 안산(安山)에 은둔하였고, 9世 독선당공(獨善堂公) 혼(渾)은 학문과 교육에 힘쓰고 도덕예절을 실천궁행(實踐躬行)하여 만인의 사표로 추앙 받았으며, 네 아들 모두 학행이 고결하고 문무에 걸출하여 네 종파(湖隱·參判·進士·承旨公派)를 이루었다. 그의 아들 승지공(承旨公) 홍개(弘漑)는 임진왜란에 그리고 증손 충장공(忠壯公) 정걸(挺傑)은 병자호란에 각각 의병장으로 호국순절하여 충절의 종문을 더욱 빛냈다.
    ▸ 후손들은 안산을 중심으로 황해도 안악과 해주 그리고 전북 고창과 충남 서천에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시조로부터 12世까지 봉안된 안산 선영은 안산시 향토유적 제8호와 제10호로 지정되어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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