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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咸)

    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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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함씨(咸氏)는 20본관에 인구는 2000년조사때는 총 75,955명이었다.현존하는 모든 함씨(咸氏)의 도시조 함혁(咸赫)은 옛날 삼한시대(三韓時代)초에 한강을 중심으로 여러 부족이 부족국가을 형성할 때 용문산 서록(西麓:경기도 양평의 옥천면 용천리 상곡)에 석성(石城)을 쌓고 웅거(雄據)한 호장(戶長:고을의 맨 윗자리 벼슬)으로 세칭(世稱) 함왕주악(咸王周鍔)으로 불리웠다고 전한다.함씨(咸氏)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문헌에는 66본까지 기록하고 있으나 양근,강릉을 제외한 본관은 세거지라고 하며 모든 함씨는 함혁(咸赫)을 도시조로 하는 같은 뿌리임이 확실하여1936년 병자보(丙子譜)발간때 모두 합보(合譜)되었다고 한다.강릉.양근함씨(江陵,楊根咸氏)윗대 조상은 함 왕(咸王),양평 용문산 근거로 한강유역까지 통치지역함왕에게 고사기원하면 소원성취강릉함씨(江陵咸氏) 시조 함규(咸規:시호는 양후)는 고려때 통합삼한익찬개국공신으로 광평시랑 평장사(廣評侍郞:광평성은 고려초에 백관을 다스리던 관청,그 광평성의 버금가는 벼슬)를 지내고 몽고군 침입시 대사마(大司馬병조판서) 대장군(大將軍:종3품)을 지냈다.그의 선조는 당나라에서 병부상서(兵部尙書:고려때는 정3품 국방장관)와 평장사(平章事:고려때는 중서문하성의 정2품부총리)를 역임하고 우리나라에 귀화한 함혁(咸赫)이라고 한다.함혁(咸赫)은 익화(양근)자사(刺史:995년(고려 성종14)에 둔 외관(外官),한나라때는 군(郡).국(國)을 감독하기 위해 각 주에 둔 감찰관) 재직시 선정을 베풀었다고 하며, 그는 함왕(咸王)으로 불렸는데 양평 용문산을 근거로 한강유역까지 통치지역으로 다스렸다.지금도 용문산에는 함왕(함혁)이 거쳐하던 궁궐터가 남아있으며, 견고한 성으로 외적을 막아냈고 주민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씨족적 부족국가의 왕(王) 이었던 함왕에게 고사기원하면 소원성취 한다는 소문이 지금까지도 전한다.한편 그가 쌓은 석성은 그 둘레가 '2만9천5십8자'나 되었다고 한다.그리하여 후손들은 양근(楊根:양평 옛지명)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며,15세손 함신(咸信:일명 훈)이 호부상서(戶部尙書:호구(戶口).공부(貢賦).전량(錢糧).식화(食貨) 등의 일을 맡아보던 정3품장관)를 지내고, 785년(신라 원성왕1) 김주원(金周元:강릉 김씨시조)을 따라 강릉(江陵)에 이주하여 살게 되어,본관을 강릉(江陵)으로 개칭하게 되었다.그후 21세손 함규(咸規)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개국에 공을 세워 익찬개국공신(翊贊開國功臣)으로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고려 정3품 문관 품계,995년(성종14)에 은청흥록대부로 바뀜).광평시랑(廣評侍郞:정4품차관)을 지냈으며, 후손들은 그를 강릉함씨(江陵咸氏)의 시조로 받들고 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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