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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허씨(金海許氏)의 시조 허염(許琰)은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비(金首露王妃) 허황후(許黃后:황옥)의 35세손으로 고려 문종때 출생하여 공을 세우고 삼중대광(三重大匡:고려때 정1품 문관 품계)으로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김해에 살았으므로 본관을 김해(金海)로 삼았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通譜)에도 그는 고려때 삼중대광(三重大匡:정1품 품계)으로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졌다고 하며 시조의 세거지인 김해(金海)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가락군 인전파(駕洛君 仁全派),호은공 기파(湖隱公 麒派),중승공 린파(中承公 麟派),전직공 인부파(典直公 仁副派),증성군 구년파(甑城君 龜年派),판서공 언룡파(判書公 彦龍派),상서공 상파(尙書公相派) 등 크게 7파로 분파되었다.김해허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15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로 나뉘었음)에 40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시험)에 66명 등 121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김해허씨(金海許氏)는1985년에는 29,314가구 121,607명이었고,2000년에는 37,788가구 121,031명이었다.김해(金海)는 경상남도 김해 일대의 옛 지명으로 가락국(駕洛國)의 문화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다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바꾸어 양주(良州:양산 梁山)의 관할로 두었다.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절도사의 버금자리로 종2품)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김해를 한때 김녕이라함)로 승격되었다.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김해군이 되었고 1918년 좌부면과 우부면이 김해면으로 통합되었다.1981년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 되었으며1995년 김해군과 통합하여 김해시가 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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