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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제학(大提學) 6명 정승 6명 배출 한 조선의 20대 명벌(名閥)의령남씨(宜寧南氏)는 신라 경덕왕 14년 시조 영의공(英毅公)남민(南民)이 경덕왕으로부터 남씨(南氏)로 사성(賜姓)받은 것이 시초이다.<의령남씨대종회>와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1200년대 후기에 남씨는 영양.의령.고성 등 3관(三貫)으로 나누어졌다. 의령남씨의 관조(貫祖)는 고려시대에 통헌대부(通憲大夫:종2품문관품계)로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1098(헌종1)에 중추원부사를 고친것으로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군기 등의 일을 맡아본 관청의 정3품)를 역임한 남군보(南君甫)이다.의령남씨는 남씨문중(南氏門中)의 둘째 집으로 고려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인물을 배출해온 조선 20대 명벌이다.아울러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144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과거)에 384명,역과에 1명,의과에 1명,율과에 1명 등 531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다.의령은 1895년(고종 32)지방제도 개정으로 의령군으로 개칭되어 진주부 관할이 되었다가 이듬해인 1896년 경남 의령군이 되었고 1979년 의령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의령남씨는 지난 2000년의 조사에서 46,529가구에 인구는150,394명이었다.의령남씨는 시조 영의공(英毅公) 이후 400년 동안 고적의 유실로 세대와 소목(昭穆:종묘.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로 왼쪽줄을 소(昭)라 하고,오른쪽 줄을 목(穆)이라함)이 분명치 않아 고려 중엽에 이르러 나타난 3형제의 기록에 의하면 홍보(洪輔),군보(君甫),광보(匡甫)인데 둘째인 군보(君甫)는 고려시대 통헌대부(通憲大夫)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정령을 출납하던 추밀원의 3품)의 벼슬을 지냈으며 의령남씨 1세조로 봉사(奉祀) 되고 있다.묘는 경남 의령군 의령읍 서동(西洞)에 있으며, 매년 음력 3월1일과 9월9일 봄,가을에 제향(祭享)을 지내고, 후손들은 1987년 유지(有志) 및 헌성금으로 대정화(大淨化) 사업을 한 이후 2005년 3월 정기총회에서 관조 재실 건축 및 묘역정화사업을 추진키로 결의하여 사업추진위원장인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 남종우 의령대종회장의 노력과 후손들의 정성어린 성금으로 의령남씨 관조(宜寧南氏 貫祖)인 통헌대부추밀원직부사군보(通憲大夫樞密院直副使君甫)의 재실(齋室)과 관리사(管理舍),비각(碑閣)등을 짓고 묘역을 정화하여 2007년 4월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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