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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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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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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에 '벚나무'를 서울에 처음 심은 대학자 홍양호,시파.벽파로 나뉘어 대립한 형제정승혜경궁홍씨, '산림경제'의 저자 홍만선풍산홍씨(豊山洪氏) 시조 홍지경(洪之慶)은 1242년(고려 고종 29)에 문과(文科:대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국학 직학을 역임한 후 풍산(豊山)에 정착 세거하였다. 후손들은 시조의 세거지인 풍산(豊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풍산홍씨는 고려말에서 조선 헌종대에 까지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세도가문으로 명성을 떨쳤다.시조 홍지경의 아들 홍애(洪崖),홍간(洪侃)은 첨의사인(僉議 舍人:첨의부의 4품)과 지제고(知制誥:고려때 왕이 반포하는 교서를 지어바치던 벼슬로 보문각등의 관원이 겸임 조선때는 지제교)에 올랐으나 바른말로 극간을 하다 동래 현령(縣令:종5품 수령)으로 좌천되어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3세손 홍유(洪侑)는 진현관(進賢館:1298년(충렬왕24)에 집현전을 고친것,고려때 재능있는 문신이 임금을 시종하던 관아로 대제학은 종2품),보문각(寶文閣:경연과 장서를 맡아보던 관아),춘추관대제학(春秋館 大提學:춘추관은 시정의 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에 올랐으며,임금으로부터 자금어대(紫金魚袋:대궐에 출입할때 허리에 차는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 띠로 왼쪽은 대궐에 두고 오른쪽은 휴대하여 대궐 출입할때 짝을 맞춤)를 하사 받았다.5세손 홍구(洪龜)는 승의교위(承義校尉:종6품 무관직 품계)로 낭장(?將:고려때 무관의 정6품)을 지냈으며 고려말에 관직을 버리고 현재의 고양시 벽제 성석리에 정착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6세손 만은(萬隱)홍재(洪載)는 고려말의 절신으로 두문동(杜門洞:개성 광덕산 마을)에 은거하였다.그는 소윤(少尹:한성부의 정4품)을 거쳐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홍문관.예문관의 정2품문형)에 올라 가문을 크게 빛냈다.12세 홍응복(洪應福)의 아들 홍천경(洪千璟)은 한림(翰林:예문관의 검열)에 재직시 김연흥의 옥사와 관련되어 옥고를 치른뒤 통정대부(通政大夫:정3품 당상관)로 호조참의(戶曹參議:정3품 차관보)에 올랐다.숭정대부(崇政大夫:종1품 하(下)의 품계)로 의정부 좌찬성(左贊成:의정부 종1품)에 증직된 홍수(洪脩)의 아들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은 선조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호당(湖堂:재덕을 갖춘 유능한 문신을 '장의사'에서 사가독서하여 오로지 공부하도록 한 독서당,세종때 도입되었음)에 뽑혔다.그는 여러 관직을 거쳐 경상,경기관찰사(觀察使:종2품 감사),개성유수(留守:2품 지방장관)를 지냈으며 이어 사헌부 대사헌(大司憲:백관을 규찰하던 사헌부의 종2품 검찰총장)을 역임하였으며,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정1품품계)로 의정부영의정(領議政:정1품 정승)에 증직되었다.조선시대 사림(士林)의 한사람으로 성리학적 실천윤리에 충실했던 홍이상은 소학(小學:송나라의 유자징이 주자의 지도를 받아서 편찬한 초등학생용 교양서)을 학문과 교육의 기본으로 삼아 제례의식(祭禮儀式)을 가례(家禮)대로 실행하였으며,걸군소(乞郡疎:조선때 문과에 급제한 선비가 왕에게 연로한 부모를 모시기 위해 고향의 수령자리를 청 하는던 일)에 나타나듯이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그는 여섯아들과 열한명의 손자를 배출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큰 아들인 홍방은 관찰사(觀察使:종2품 감사)와 사헌부대사헌(大司憲:백관을 규찰하던종2품 검찰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저서로는 지계예설(芝溪禮設)과 제사하는 의식과 법도를 저술하였다.둘째 아들 홍립은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로 황해도관찰사(觀察使:종2품 감사)를 지냈으며,셋째 홍집은 사헌부장령(掌令: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던 사헌부 정4품)을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로 이조참판(參判:종2품 차관)에 증직되었다.넷째 홍영(洪霙)은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로 예조참판(禮曹參判:종2품 차관)에 이르렀으며 인조23년에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정1품품계)로 영의정(領議政:정1품정승)에 추증되었으며,아들 홍계원을 포함한 후손이 가장 번창하여 풍산홍씨를 더욱 빛나게 했다.다섯째 홍박은 수운판관(判官:5품)을 역임하였고,여섯째 홍탁은 통정대부(通政大夫:정3품품계)로 남원부사(府使:정3품)에 올라 영국공신에 녹훈되고 의정부 좌참찬(左參贊:정2품)에 증직되어 풍산홍씨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숙종때 학자로 이름난 예조참의(參議:정3품차관보) 홍주국(洪柱國)의 아들 홍만선(洪萬選)은 장악원정(掌樂院正:조선때 음악에 관한 일을 맡아본 관아의 벼슬)을 지냈다.그는 행실이 근엄하고 인격이 고매하여 당쟁에도 가담치 않아 세인들은 그를 완인(完人)이라 불렀다고 하며,주자학(朱子學)에 반기를 들고 실용후생(實用厚生)의 학풍을 일으켜 실학 발전의 선구자로 알려졌다.농예(農藝),의약(醫藥),구황(救荒)에 관한 저서 산림경제(山林經濟)는 후세의 실학사상에 중요한 공적을 남겼고 류중림.서유구 등의 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외에도 가문을 중흥시킨 인물로 영조때 판돈령부사(判敦寧府使:돈령의 친밀을 도모하기위한 사무처리를 하던 관청의 벼슬)에 오른 홍만조(洪萬朝)는 일찍이 대사간(大司諫:임금에게 간하는 일을 맡아본 관아인 사간원의 정3품),좌빈객(左賓客:세자시강원의 2품)등을 거쳐,7도의 관찰사(觀察使:종2품 감사)와 2도 안찰사(按察使:지방장관.절도사)를 역임하고 우참찬(右參贊:의정부 정2품)과 형조판서(刑曹判書:정2품법무장관)를 지낸뒤 기로소(耆老所:조선 태조3년(1394)에 정2품 이상의 70세가 넘은 문관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했던 기구로 군.신이 같이하던 원로회의)에 들어가 명성을 떨쳤다.숙종때 대사간(大司諫:왕에게 간하던 일을 맡아하던 사간원의 정3품)을 지낸 홍만용(洪萬容)은 영안위 홍주원(洪柱元)의 아들로 판서(判書:6조의 정2품 장관)를 거쳐 우참찬(右參贊:의정부의 정2품)에 올랐다.1754년(영조31)에 예조판서가 된 홍상한(洪象漢)은 병조판서,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돈령간에 침밀을 꾀하던 관청의 벼슬)를 거쳐 1759년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추국하던 관청,금부라고 하며 종1품)로서 세손사부(世孫師傅:세자의 스승)를 겸임하고 영의정(領議政:정1품 정승)에 추증되었다.홍상한의 아들 홍낙성은 정조때 좌의정(左議政:정1품정승)에 올라 사은사(謝恩使:우리나라에 호의를 베풀었을 때 중국에 보내던 사신)로 명나라에 다녀온뒤,1797년(영조 21) 80세로 궤장(안석과 지팡이)을 하사받고,기로소(耆老所:정2품 이상의 70세 이상의 문관을 예우하기위해 설치한 기구로 1394년(태조3)에 설치함,나이많은 임금도 같이 하는 기구로 태조,숙종,영조임금이 기로소에 들어갔음)에 들어가 유명하였다.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은 영조때 예조판서(禮曹判書정2품장관)를 지낸 홍현보(洪鉉輔)의 아들로 그의 딸이 혜경궁 홍씨이며 영조때 많은 업적을 남겨 조선후기 문화 부흥에 크게 공헌하였다.홍봉한은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홍씨의 아버지로 동생인 홍인한과 함께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인한 격동을 맞아 형인 홍봉한은 영조의 실덕(失德)을 힐책하는 [시파]로,아우인 좌의정(左議政:정1품정승) 홍인환은 사도세자의 실덕을 규탄하는 [벽파]로 갈리어 날카롭게 대립하였다동생 홍인한(洪麟漢)은 형조를 제외하고 5조의 판서(判書정2품장관)를 거쳐,우의정(右議政:정1품정승)에 이어 좌의정(左議政:정1품정승)에 올라, 형제가 정승(政丞:정1품정승)을 역임하여 가문을 크게 빛냈다.그외 정조때 대제학(大提學:홍문관.예문관의 정2품 문형)을 지낸 홍국영(洪國英)이 특히 유명했는데,<시파와 벽파>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조를 보호한 사람이 홍국영(洪國榮)이다.그는 홍주원의 둘째 아들인 홍만형(洪萬衡)의 5대손으로 정조가 즉위하자 도승지(都承旨:정3품 당상관 왕의 비서실장)와 숙위대장이 되어 세도정치를 휘두르지만 4년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이밖에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왕실의 친척의 친밀을 꾀하기 위해 베풀었던 관청의 벼슬) 홍현주(洪顯周)가 뛰어났다.홍양호(洪良浩)는 당대의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로 <영조실록>,국조보감(國朝寶鑑)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중국의 석학들과 교류하고 돌아와 고증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그는 1764년(영조40)에는 일본에서 벚나무를 들여와 서울 우이동에 심어 경승지를 이루게 한 장본인으로 유명하다.우부승지(右副承旨:승정원 정3품 당상관) 홍인모의 아들 홍석주(洪奭周)는 특히 성리학에 밝았고 문장에 있어서 <10 대가(十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여러 관직을 역임한후 실록청 총재관이 되어 <순조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한말에는 한일합방이 되자 망국의 한을 품고 자결한 홍범식(洪範植)이 풍산홍씨가 배출한 인물이며,독립운동에 몸바친 홍충희(洪忠熹)가 뛰어났고 홍진(洪震)은 통일 독립정부수립을 위한 비상국민의회 의장으로 추대되어 풍산홍씨 가문을 더욱 빛냈다.시조의 묘는 경북 안동시 풍산면 신성포 오산당에 있다. 풍산홍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127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4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는시험)에 298명 등 429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인구조사에 의하면 풍산홍씨는1985년에는8,323가구 35,176명 이었고,2000년에는11,222가구 36,420명이었다. 풍산(豊山)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일대의 옛 지명으로,923년(태조6)에는 풍산(豊山)또는 풍악현(豊岳縣)이라 개칭하였고,1172년(명종2)에 감무(監務:작은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가 파견되면서 독립하였다가 뒤에 안동도호부에 합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안동군 풍산현의 4개 동 및 서선면 일부 7개동을 병합하여 풍산면으로 개칭하여 11개 동으로 개편 관할하다가, 1973년 풍산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1995년 안동시에 통합되었다.부림홍씨(缶林洪氏,부계홍씨)부계홍씨는 남양홍씨(南陽洪氏:당홍 唐洪)에서 갈라진파 시조는 홍란부림(缶林)은 경상북도 군위군(軍威郡,구미시)부계면 일대의 옛 지명으로, 757년(경덕왕16)에 부림현(缶林縣),937년(태조20) 부계(缶溪)로 이름이 바뀌었다.1018년(현종9)에 상주(尙州)로,후에는 선주(善州:선산)로 편입시켰고 1391년(공양왕3)에는 의흥군(義興郡)이었다.1896년 경상북도에 소속되었다가,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군위군 관할로 개편되었다.부림홍씨(缶林洪氏) 시조는 홍란(洪鸞)이다.시조 홍란은 고려 중엽에 벼슬이 시중(侍中:종1품으로 정사를 보살피고 서정을 총리하던 정승)에 이르렀다.그의 선계(先系)는 남양홍씨(南陽洪氏:당홍 唐洪)에서 갈라진 파이며,시조 홍란이 남양에 살다가 그뒤 부림현(缶林縣)으로 옮겨 세거하자 그곳을 관향으로 삼게 되어 남양홍씨(南陽洪氏)와 따로 족보를 만들었다고 한다.그러나 그 뒤의 세계(世系)를 잃어 고려때 직장동정(直長同正6품 이하의 문관과 5품 이하의 무관에게 주던 정직(正職)에 준하는 명예직으로 처음으로 벼슬길에 오르는 경우에 주었으며 정직 이름 밑에 붙여썼음,직장은 7품)을 지낸 홍좌(洪佐)를 1세조로 받들며 계대(系代)를 잇고 있다.부림(缶林)은 의흥(義興)의 옛 이름으로 부계(缶溪)라고도 하였다. 족보 신묘보(辛卯譜)에는 선대(先代)의 비문(碑文).호적(戶籍) 등에 같은 후손이면서 부계(缶溪)로 쓴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그러나 모두 같은 후손이다.그리고 남양대보(南陽大譜)간행때,부림홍씨(缶林洪氏)도 합보(合譜)하였다.부림홍씨(缶林洪氏)는 홍좌(洪佐)의 현손(玄孫:손자의 손자,고손자) 홍인단(洪仁袒).홍인석에 이르러 처음으로 좌복야공파(左僕射公派:좌복야는 상서도성 소속의 정2품),예빈경공파(禮賓卿公派)의 2파로 나뉘어진다.좌복야공파(左僕射公派)는 10세손으로 어모장군(禦侮將軍:정3품 당하관 벼슬)을 지낸 홍재명(洪在明)까지 단계로 이어지다가,그 아들대에서 3파로 나뉘어지는데 홍구(洪球)의 후손이 장군공파(將軍公派),홍찬(洪瓚)의 후손이 교위공파(校尉公派),홍침(洪琛)의 후손이 장사랑공파(將仕郞公派:장사랑은 종9품)이다.예빈경공파(禮賓卿公派)는 10세에 이르러 홍치하(洪致賀),홍귀통(洪貴通),홍귀달(洪貴達)의 세 후손이 있었는데 홍치하(洪致賀)는 후손이 없고,홍귀통(洪貴通),홍귀달(洪貴達)의 두 계통으로 후손이 이어진다.홍귀통(洪貴通)의 후손은 아들 홍언섬(洪彦暹)의 단계로 이어졌다. 문광공(文匡公) 홍귀달(洪貴達)의 후손은 각각 현감(縣監:종6품),이조좌랑(佐郞:정6품)을 거쳐 이조정랑(吏曹正郞:정5품의 전랑으로 문.무관의 추천권이 있어 특별한 권한이 부여되었음)을 지내 유명하였으며,진사(進士:소과와 진사과에 급제한 사람)를 역임한 홍언승(洪彦昇),홍언충(洪彦忠),홍언국(洪彦國)등으로 이어졌다.여사휘찬(麗史彙纂),동사제강(東史提綱)을 남겨 이름이 알려진 홍여하(洪汝河)는 홍언국(洪彦國)의 현손(玄孫:손자의 손자)이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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