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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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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자학의 태두 안향 문과급제자 188명 음악의 대가로 거문고 악보인 금합자보(琴合字譜) 발간한 안상안중근 안명근 안창호 안익태 등 현달(顯達)한 인물의 산실순흥안씨(順興安氏)는 고려 신종때인 서기 1200년경 순흥에 거주했으며, 흥위형보승별장(興威衡保勝別將:정7품)을 지내고,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신호위는 고려때의 군제 6위의 하나로 국토방위를 담당했음.좌우위.흥위위와 더불어 3위라함 3위는 개경의 수비.변방의 수비임무도 지고 있는 경군의 핵심 주력부대로 총 병력은 7000명 이었음 상장군은 정3품)으로 추봉된(또는 같은 정3품인 상호군(上護軍:조선때 바뀜)에 추봉되었다고함)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시조 안자미(安子美)가 순흥(順興)에 정착하여 살았기에 후손들이 관향을 순흥(順興)으로 삼았다. 순흥안씨(順興安氏)는 시조 안자미(安子美)의 세 아들을 두었는데, 안영유(安永儒:一派,부사공 府使公,부사는 고려때 개성부의 수령,또는 대도호부사로 지방장관).안영린(安永麟:二派,별장공 別將公,별장은 정7품 무관).안영화(安永和:三派,교서랑공 敎書郞公,교서랑은 비서성의 정9품)를 파조(派祖)로 하는 3파로 대별(大別)된다.이 3파(派)의 후손에서 22개파로 분파되었고,그후에 많은 학자와 시호(諡號)를 받은 인물이 33현(賢),봉군(封君) 21현(賢),문과급제자 188명을 배출하였다.시조의 증손이자,1파인 안영유(安永儒)의 아들 안향(安珦)은 주자학(朱子學)의 태두로 널리 알려진 순흥안씨가 자랑하는 역사적 인물이다.고려 원종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여러벼슬을 거쳐,중국에서 쓰는 서적을 도입하여 후진을 양성하는 등 유학의 진흥에 힘썼다.회헌(晦軒) 안향(安珦,시호는 문성文成)은 벽상삼한삼중대(壁上三韓三重大匡:공신당의 동서벽에 초상이 그려진공신으로 정1품 품계)으로,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1275년(충렬왕1) 원나라의 간섭으로 기존은 문하시중이 바뀐도첨의부 종1품 정승)에 이르렀으며,수문전태학사(修文殿太學士:고려때 대학사.학사들이 임금에게 경서(經書)를 강론하던 곳으로,인종 14년(1136)에 문덕전을 고친 것으로 충렬왕 27년(1301)에 폐하였다가,공민왕 5년(1356)에 다시 두었으나,공민왕 21년(1372)에 없앴고,태학사는 2품 대제학)로서,우리나라에 최초로 주자학을 도입하였다.그는 장학재단인 섬학전(贍學錢)을 설립하고, 고려말 유학 진흥에 큰 공적을 세워 문묘(文廟)에 배향하게 하였으며,그의 영정을 그려 순흥향교에 모시게 하였는데, 국보 제111호로 지정되어 소수서원에 소장되어 있다.문의공(文懿公) 질재(質齋) 안문개(安文凱)는 삼중대광(三重大匡:정1품품계)로 좌정승(左政丞:종1품재상)에 올라 지공거(知貢擧:과거를 주관하던 시험관)를 겸임했고,충숙왕과 원나라에서 억류생활까지 하면서 고려의 국난극복에 힘썼다. 증손 안준(安俊)은 고려말의 충신이다.안향의 아들이 찬성(贊成:문하부의 정2품 좌.우찬성의 통칭) 안우기(安于器)이고, 손자가 정당문학(政堂文學:중서문하성의 종2품 재신)을 지낸 안목(安牧)이며, 증손대에서 안원숭(安元崇).안원형(安元衡).안원린(安元璘)의 3형제가 있다.첫째 아들 안원숭은 순흥안씨로 이어지고,둘째아들 안원형은 신죽산안씨(新竹山安氏)로 갈렸으며, 셋째 안원린은 탐진안씨로 분적했다고 한다.그러나 다른 문헌에는 탐진안씨의 시조가 고려 공민왕때 무장(武將)으로 평장사(平章事:정2품 부총리)를 지낸 안우(安祐)로 되어있고, 전공총랑(典工摠郞:고려때 6사의 하나인 시랑(侍郞)을 고친 정4품 차관)인 안덕린(安德麟)을 파조로 하는 또 다른 파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산413-1에는 순흥안씨추원단(順興安氏追遠壇)이 있다.이곳에서 시조와 11위 조상의 제단을 모시고,매년 음력 10월1일 전국에서 후손들이 모여 세사(歲祀)를 봉행하며,후손 모임으로는 순흥안씨대종회와 각파 종친회,그리고 전국 시.도에 종회가 있다.인구조사에서 순흥안씨는 1985년에는 99,937가구에 417,598명이었으며, 2000년에는 145,254가구에 468,827명으로 조사되어,우리나라 안씨(安氏)의 73,5%를 차지했다. 순흥은 경상북도 영주시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940년(태조 23)에 흥주(興州)라 하였다가, 1018년(현종9) 안동부(安東府)에 속하여 순안현(順安縣)으로 이속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작은 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가 설치되었다. 그 후 충렬왕이 태(胎)를 봉안하여 지흥주사(知興州事)로 승격되었으며, 충목왕이 태를 봉안하여 순흥부(順興府)로 승격되었다.1413년(태종13) 도호부(都護府)로 바뀌었다가, 1457년(세조3) 부사(府使) 이보흠(李甫欽)이 역모를 꾀하였다고 하여 풍기(豊基) 영천(榮川)에 나누어 편입시켰고, 1683년(숙종9)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로 복구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군을 없애고, 봉화(奉化)와 영주(榮州)에 각각 편입시켜 영주시에 속한 순흥면으로 남아 있다. 1980년 영주시가 생기면서 영풍군의 관할이 되었다가,1995년에 영풍군이 영주시에 통합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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