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성씨유래검색

  • 성씨

    황(黃)

    문중

    황(黃)

  • 유래

    황희 정승의 가문 허문지사 일체물행 (虛文之事 一切勿行) 방촌 유훈(尨村遺訓)왜의 내침을 예고한 정사(正使) 황윤길,학자로 의학.지리에 정통하여여지도(輿地圖) 만들고 지도연의(地圖衍義)를 저술한 황엽(黃曄)장수(長水)는 전라북도에 있는 이른바 무.진.장 중의 한 지명으로 고려초에 장수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남원부(南原府)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391년(공양왕 3)에 장계의 감무(長溪監務:감무는 작은 현에 중앙에서 판견한 감독관)가 이 지역을 함께 다스렸다.1392년(태조1)에 장수현을 복구하여 장계현을 병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남원부 장수군(長水郡)이 되었고 1979년 장수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장수황씨 대종회>에서 밝힌 자료와 문헌에 따르면 장수황씨의 시조는 황경(黃瓊)이다. 서기 1723년(경종 계묘년 癸卯年)에 편찬된 장수황씨세보(長水黃氏世譜)에는 시조는 경(瓊)이며 "신라(新羅)에서 벼슬하여 지위가 시중(侍中:정승 반열 고려때는 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한 종1품 정승)에 이르렀고 배(配)는 경주김씨(慶州金氏)니 경순왕(敬順王) 김부(金溥)의 딸이다"라고 되어있다고 한다.또한 대제학(大提學:홍문관.예문관의 정2품 문형)과 영의정(領議政:의정부 정1품 정승)을 지낸 석학(碩學) 조인영(趙寅永)도 1831년 운계(雲溪) 황신구(黃信龜)의 비문에 "신라 상주(尙主,상주는 부마(駙馬)와 같은 왕의 사위) 경(瓊)이 비로소 득성(得姓)하였다"라 하여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문헌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에 의하면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때의 무신(武臣) 구대림(丘大林)과 문신(文臣) 황락(黃洛)이 교지국(交趾國)에 사신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평해에 표류하였는데 그 곳에 거주하여 황씨(黃氏)의 시조가 되었다"라 되어 있고 그 둘째 아들 을고(乙古)가 장수황씨 조상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그러나 이 문헌은 모화사상(慕華思想)이 극에 달하였던 조선 후기의 저술로 추정할 뿐 작자와 연대가 모두 미상하고 내용이 황당하여 <장수황씨>는 이를 전설로만 생각할 뿐 이라고 한다.여지승람(輿地勝覽)의 전라도 장수현 성씨조(姓氏條)에 본현황씨(本縣黃氏:장수현의 황씨)라 되어있으며 황경(黃瓊)의 9세손 황공유(黃公有)가 고려 명종때 무신(武臣)의 변(變)을 피하여 고향인 장수(長水)로 돌아왔고 다시 지방 관헌을 피하여 남원으로 옮겼다고 한다.이어 후손이 이곳에 살았으니 "광한루(廣寒樓)가 그 구기(舊基)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장수(長水)는 본래 백제의 우평(雨坪)이었는데 신라때 고택(高澤)으로 고쳐 장계군(長溪郡)에 속하였으며 고려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고쳐 남원부(南原府)에 속하게 하였다"라고 같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장수황씨>는 이들 문헌의 기록으로 볼때 고려 명종 이전의 고려시대에 장수(長水)를 관향(貫鄕)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장수황씨(長水黃氏)의 시조 황경(黃瓊)은 통일신라 경순왕의 부마(駙馬:부마도위로 왕의 사위)로 시중(侍中: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하던 종1품 정승)을 지냈다.그 후 세계(世系)를 잃게되어 후손들은 증참의(贈 參議:정3품차관보) 황석부(黃石富)를 1세조로 받들며 계대(系代)하고 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581-444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