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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는 지행합일 한국의 지성 대사헌 이해(李瀣)와 퇴계 이황 형제를 배출한 명문조선시대의 대유학자 이 황의 향시(鄕試) 1등 답안지 경북대박물관에서 소장진보이씨(眞寶李氏,진성이씨)는 이석(李碩)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시조 이석(李碩)은 고려말에 진보현(眞寶縣:지금의 진성)의 고을 향리(鄕吏:고려.조선때 한고을에서 대를이어 내려오던 아전)로 있다가, 생원시(生員試,초시 종장에 급제한 선비)에 급제하였으며, 진보읍(邑)에 살면서 관아에서 각성(角聲)이 들리면 뜰에 내려와 부복하였다가 다시 일어나곤 하여 처향(處鄕)의 도(道)를 엄숙하게 지켰다고 한다.이런 소문을 들은 관아에서는 이를 미안하게 여겨 각성이 안들리는곳에 집을 지어주고 이주하도록 하였으며, 시조 이석이 살던 집터가 '이씨시조(李氏始祖)'가 살던터라 하여,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조선씨족통보에는 그의 아버지는 진보 고을의 호장(戶長:고을 아전의 윗자리)을 지낸 이영찬이며, 조부(祖父)는 이송주로 기록되어있다.진보이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59명,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119명 등 178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명문이다.진보(眞寶)는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지명으로, 세종때 청부(靑鳧)를 합하여 청보군(靑寶郡)이라 하다가 진보로 고쳐 현으로 삼았다. 1474년(성종 5) 청송(靑松)에 편입하였다가 1478년(성종 6) 다시 복구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보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에 이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동면과 북면은 영양군(英陽郡)에 병합되었고 나머지는 청송군(靑松郡)에 편입되었는데 그 중심지역은 진보면(眞寶面)으로 남아 있다.인구조사에서 진보이씨는 1985년에는 총 14,428가구에 58,877명이었으며,2000년에는 20,890가구에 66,407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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