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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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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조의 화려한 인맥 최다 영의정, 3대(代)정승영의정 심온(沈溫), "내 자손들은 대대로 박씨(朴氏)와 혼인하지 말라" 유언심의겸이 서쪽인 정동(貞洞)에 살아 그 일파를 서인(西人)이라 함, 사색당쟁의 주역청송심씨(靑松沈氏)는 문헌에 보면,고려 충렬왕때 문림랑(文林郞:29품계 중 '종9품 상계'의 문산계로 제28계.29계는 장사랑)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위위시는 고려때 의장(儀仗)즉 병기와 기물을 맡아본 관청으로 처음에는 내군(內軍)이라 했으며 995년(성종 14)에 '위위시'라 했음,위위시승은 종6품이었으며 최고벼슬은 판사로 정3품)을 지낸 심홍부(沈洪孚)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시조 심홍부(沈洪孚)의 증손 심덕부(沈德符)가 고려말 우왕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1369년(공민왕18)에 공민왕이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이전의 '첨의찬성사'를 고친문하부의 정2품부총리)에 이르러,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청성은 청송의 옛지명)에 봉해졌으며,후에 청성군충의백(靑城君忠義伯:백(伯)은 고려때 '오등봉작제(공.후.백.자.남)'의 세번째 작위로 식읍 7백호를 하사 받았으며,1356년에 정1품으로 정함)에 진봉(進封)되어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게되었다.청송(靑松)은 경상북도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때는 야성군(현 영덕군)에 속했다가, 1895(고종32)년에 청송군(靑松郡)이 되었다. 심덕부는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개국에 공을 세우고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으며,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조선초 정사를 도맡아 보살피던 최고 관청의 으뜸벼슬)와 영삼사사(領三司事)를 거쳐, 1399(정종1)에 좌정승(左政丞:조선초의 좌.우 정승 중 하나로 1품 정승)에 이르렀다.그의 아우 심원부(沈元符:안정공)는 고려말에 여러관직을 거쳐, 전리판서(典理判書:정3품 장관)에 올랐으나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조선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杜門洞:개풍 광덕산)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으며 후손들도 그의 유훈을 받들어 선훈불사(先訓不仕)라 하여 대대로 벼슬을 하지 않았다. 청송심씨(靑松沈氏)는 시조의 증손 심덕부와 심원부(沈元符) 형제 대에서 크게 두 파로 갈린다.고려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후 문하시중(門下侍中:고려때 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한 종1품 정승)을 지내고 조선개국후 안정공(安定公) 심덕부의 자손은 대대로 서울에 살며 숱한 벼슬을 지낸 데 반해 <여말 5은>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고, 전리판서(典理判書:정3품장관)를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자,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간 악은(岳隱) 심원부의 자손들은 선조의 유훈을 지켜 대대로 고향에 살면서 벼슬을 멀리했다.그래서 큰 집인 심덕부의 후손을 경파(京派),경북 청송군을 중심으로 영남 일대에 퍼져 사는 작은집인 심원부의 자손을 향파(鄕派)라 부르고 있다.조선의 개국과 함께 명문벌족(閥閱:나라에 공이 많고 벼슬 경력이 많은 집안)의 지위를 굳혀온 청송심씨는 심덕부의 아들 7형제 대에서 가세가 크게 중흥되어 화려한 인맥을 형성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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