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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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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포백씨(藍浦白氏)는 신라 헌안왕(857~860)때 벼슬이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고려때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소속의 정4품으로 간쟁(諫諍)과 봉박(封駁)을 담당하는 낭사(郞舍)의 하나)를 지내고 삼중대광(三重大匡:정1품품계)에 오른 백중학(白仲鶴,시호 익렬(翼烈)을 시조로 받든다.백중학은 뜻한바 있어 벼슬을 내놓고 고향에 돌아와 후배 양성으로 일생을 마치며 남포현 일역에 학문의 길을 처음으로 정착시킨 인물이다.그리고 남포백씨의 현조(賢祖)로 추앙 받는 연정(烟亭) 백광원(白光元)은 서기 861~875년간(신라 경문왕)때 벼슬이 광록대부(光祿大夫:고려때 문관 품계명의 하나이며 흥록대부의 후신으로 문종 때 종3품으로 정했다가 충렬왕 이후에 없어지고 공민왕 5년(1356)에 환원하여 종2품의 상(上)으로 함)로 정당문학(政堂文學:종2품재신)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중서문하성등의 정2품부총리)에 이어 문하시중(門下侍中: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한 종1품 정승)에 올랐으며 문장이 뛰어나서 중국까지 명성이 높았다.고운 최치원이 그의 비문을 지었으며 묘소는 남포현 양각산 서쪽 동막동에 후손 백이정의 묘와 상하로 한 곳에 현존하고 있다.이로서 남포백씨는 남포현에 뿌리를 내린 후 1천 2백년 가까이 번창해 온 성씨이다. 남포현은 현재의 충청남도 보령시의 남부지역 즉 남포면, 웅천읍, 주산면, 성주면 미산면을 포함한 지역인데 그 면적이 보령시의 절반을 차지한다.남포백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2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1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과거)에 1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인구조사에 의하면 남포백씨는1985년에는 1,587가구 6,619명,2000년에는 1,816가구 6,052명이었다.남포(藍浦)는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일원의 옛 지명으로,백제 때에는 사포현(寺浦縣)이라 불리었고, 757년(신라 경덕왕16)에 남포현으로 고쳐 서림군(西林郡,서천군)에 속하게 하였다. 1018년(현종9)에 가림군(嘉林郡:부여군 임천면 일대)에 편입되었다가 후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하였다.1466년(세조12)에 남포현이 되었으며,마산(馬山)이라 불리우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洪州府) 남포군으로 개편되었다가,1913년 남포면(藍浦面)으로 보령군에 편입되었다.1995년 보령군이 보령시로 통합되면서 보령시 남포면이 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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