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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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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학의 거목으로 독자적인 경세철학(經世哲學) 체계화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보다 91년 앞선 조선전도(朝鮮全圖)그린 석학 위백규장흥위씨(長興魏氏)는 주나라 혜왕때 진헌공에 봉해진 필만의 후손으로,당나라 관서지방의 홍농(弘農)사람인 위경(魏鏡)이 당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당나라때 한림원에 속하여 조칙의 기초를 맡아보던 벼슬,고려때는 왕의 조서를 짓는일을 맡아 하던 정4품)로, 서기638년(선덕여왕7)에 선덕여왕이 당나라에 도예지사(道藝之士)를 청(請)했을때,당나라 태종이 파견한 8학사(八學士)중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벼슬이 아찬(阿飡:신라 17관등중 6번째로 육두품이 오를 수 있는 가장높은 직위)에 이르렀다.위경(魏鏡)은 신라에서 문하습비후(門下拾非侯).아찬(阿飡:신라의 17관등중 6번째).상서시중(尙書侍中:상서성의 종1품정승)을 역임하고, 고려때 회주군(懷州君:회주는 장흥의 옛 지명)에 추봉해졌기에, 후손들이 관향을 장흥(長興)으로 하였다.그러나 문헌을 잃어 세계(世系)를 자세히 알 수 없자, 신라 말에 시중(侍中:신라때 집사성의 으뜸벼슬)을 역임한 위창주(魏菖珠)를 1세조로 받들며 세계(世系)를 이어왔다.문헌에 나타난 위씨(魏氏)의 본관은 13본이 전하나, 모두 세거하는 지명이며,현재는 장흥위씨(長興魏氏)단본으로 전한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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