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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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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창김씨(咸昌金氏)는 근원을 달리하는 두 계통에서 크게 3개의 파로 분류된다. [고령가야 계통]함창김씨는 고령가야의 태조(太祖)고로대왕(古露大王)을 시조로 받든다.고로대왕은 단기 2375년 임인년(壬寅年) 3월15일 함창(咸昌)에 도읍하여 개국(開國)하였고 2대 마종왕(摩宗王),3대 이현왕(利賢王)을 끝으로 279년간을 통치한 국가이다.그는 김수로왕과 함께 금합에서 나온 6명중의 한명이며 금합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씨(金氏)로 하였다.함창김씨(咸昌金氏)의 시조 고령가야왕(古寧伽倻王)은 서기42년(유리왕18년,후한 세조 건정18년)임인 3월 가락국(駕洛國,김해)북쪽 삼리허(三里許)의 구지봉(龜旨峰)에 강생(降生)하였다.이곳에는 나라의 이름이나 군신(君臣)의 칭호도 없이 구간(九干)인 아도간(我刀干) 피도간(彼刀干) 오도간(五刀干) 유수간(留水干) 유천관(留天干) 신천간(神天干) 오천간(五天干) 신구간(神鬼干) 등이 각각) 추장(酋長)이 되어 일백호(一百戶, 75,000명)의 백성을 거느리고 있었다.이날 9간(九干) 등이 백성 2∼300명을 거느리고 목욕을 마친후 강변에서 연회를 열고 있을때 구지봉(龜旨峰)에서 마치 사람소리로 "게 누구 있느냐"하는 소리가 나자 9간(九干)들이 "저희들이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 하자"나는 천상금륜왕(天上 金輪王)의 아들이다.황천(皇天)이 우리에게 명하여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내려왔으니 너희들이 구지봉(龜旨峰)꼭대기의 흙을 파서 뿌리며,「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나타내라 만일 안 나타나면 구워서 먹으리라」귀하 귀하 수기현야 고불현야 번작이끽<龜何 龜何 首基現也 苦不現也 燔灼 而喫>하고 노래하며 춤을 추라" 하였다.이에 9간(九干)들이 그 말대로 노래하며 춤을 추자 과연 구지봉(龜旨峰)에 이상한 기운이 돌고 얼마 뒤에 자영(紫纓)에 묶인 금합(金盒)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금합(金盒)을 열어보니 그 속에 여섯 개의 금란(金卵)이 있어 이를 간선(干先) 아도간(我刀干)의 집에 모셔 두었다. 다음날 9간(九干)과 백성들이 함께 모여 다시 금합을 여니 용모가 단정하고 위엄이있는 15세 가량의 6동자(六童子)가 태어났다.십여일이 지나자 신장이 9척이나 되어 장대하였다.뭇 백성이 우러러 모두 임금이 되게 하였는데 그 중 제일 먼저 강생한 수로(首露,먼저 나타났다 하여 수로)를 왕(王)으로 삼아 금관국(金官國)을 세우게 하고,나머지 5인은 각각 가야국(伽倻國)을 세우고 왕이 되었는데 두번째로 강생(降生)한 고로왕(古露王)을 왕으로 삼아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함안.함창>을 세우게 하고,그외 아라가야(阿那伽倻),고령은 대가야(大伽倻),성주(星州)는 벽진가야(碧珍伽倻),고성(固城)은 소가야(小伽倻)가 되었다.서기 42년 3월,고로왕(古露王) 백진(白珍)은 태조왕(太祖王)으로 즉위하여 이후 115년간 재위(在位)하였고제2대 마종왕(摩宗王)은 고령기원 (古寧紀元)115년 병신(丙申,신라 아달라왕(阿達羅王) 3년)에 즉위하여 65년간 재위(在位)하였으며, 3대 이현왕(利賢王)은 고령기원(古寧紀元) 179년 경신(庚子,신라 내해왕(奈解王)25년)에 즉위하여 35년간 재위(在位)하다가 고령기원(古寧紀元) 213년 갑술(甲戌) 7월에 첨해왕(沾解王)의 침략(侵略)을 받아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으나 가야연합군(伽倻聯合軍)으로 격퇴(擊退)한 후 곧 "김해(金海)로 이도(移都)하였다"고 문헌에 나타나 이때는 이미 주권(主權)을 상실하고금관가야(金官伽倻)로 병합(倂合)되었다고 한다.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은 3대 213년간의 국권(國權)을 유지하였다.금란에서 탄생하였기에 성(姓)을 김(金)이라 하였고 금합(金盒)이 자영(紫纓,자줏빛 끈)에 묶여 있었으므로 자영김씨(紫纓金氏)라 하였으며 함창(咸昌)에 나라를 세웠기에 본관을 함창(咸昌)이라 하였다.그후 고려 광종때 함창을 함녕(咸寧)으로 개칭하게 되자 함창 본주(本州)의 자손은 개칭된 함녕(咸寧)으로 고치고,타지방에 거주하는 자손들은 함창(咸昌) 그대로 본(本)을 하여 현재 함창과 함녕으로 달리하게 되었으나 원래는 같은 본이다.고령가야 왕릉은 상주시 함창읍 증촌리 7번지에 위치하며 능소는 고령가야 왕릉이고 그 동쪽의 능소는 왕비능이라 전한다. 함창 읍지에 의하면 함창김씨의 시조인 고령가야왕은 서기 42년(신라 유리왕 18) 3월15일 계욕일에 가락국(현 김해)북쪽 3리쯤의 귀지봉에 강생하였다.시조의 묘소는 1500여년간 부근 주민의 구전으로 고령가야 왕릉이라 전하여 오다가 1592년(선조 25)에 능밑 층계앞에 묻혀있는 묘비가 발견되었는데 발견 음각으로 된 글씨로 고령가야 왕릉임이 관찰사 김쉬, 함창현감 이국필 등에 의해 확인되었다. 이후 자손과 관에서 수호와 관리를 하고 매년 10월 1일과 강생일인 3월1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1712년(숙종 28)왕명에 의하여 묘비와 석물을 건립하였다.이곳은 함창도시계획에 보존 구역으로 결정되었고 1977년 지방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으며 능역의 정화와 보존관리에 성력을 기울이고 있다.[신라 계통]둘째로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후손 김인관(金仁琯,경주김씨)의 14세손 김선(金瑄)의 후손이다.김선은 서기 1468년(세조14) 식년문과(式年文科:정기과거시험,대과)에 급제하여 강원감사(江原監司,관찰사로 종2품)로서 중종반정(中宗反正)때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록되었고 함안군(咸安君)에 봉해졌다.그리하여 후손들이 선대의 세거지인 함창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함창김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7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7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 28명,역과 1명 등 4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함창은 경상북도 상주시의 옛지명으로 964년(고려 광종 15)함녕군으로 고쳐 1018년(현종9) 상주에 속하게 하였다가 함창현으로 개칭되었고,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작은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를 두면서 독립하였으며,1413년(태종13)에 현감(縣監:종6품)을 두었다.1914년 군.면 폐합으로 상주군에 병합되면서 함창면이 되었고 1980년 함창읍으로 승격되었다.인구조사에 의하면 함창김씨는1985년에는 5,589가구에 22,331명이었으며,2000년에는 8,391가구 26,318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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