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성씨유래검색

  • 성씨

    지(池)

    문중

    지(池)

  • 유래

    무장(武將)의 산실,옥편의 효시인 자전석요(字典釋要)와 종두실시 지석영대한독립군단 조직,항일전 수행한 독립운동가 지청천충주지씨(忠州池氏) 시조 지경(池鏡, 903~1003,호 암곡,자 자운,시호 선의)은 중국 송나라 중원 홍농인으로 서기 960년(고려 광종11년)에 우리나라에 귀화했다.당시 태학사(太學士:조선때의 대제학을 달리 부르는 말)로서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우리나라에 정착 귀화했으며,고려조에서 벼슬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문관의 종2품)로 평장사(平章事:정2품부총리)에 올랐으며,뒤에 태자태보(太子太保:정1품)에 이르렀다.지경(池鏡)의 6세손인 지종해(池宗海)가 충주에 살았으며 고려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문하부의 정2품부총리)를 지내고 충주백(忠州伯)에 봉해져 후손들이 충주를 본관으로 하였다.한편 충주지씨(忠州池氏)였다가 고려 태조에게 충주어씨(忠州魚氏)로 성(姓)을 하사 받은 어중익(魚重翼)도 충주지씨 6세손이다.(충주어씨 참조)충주지씨대동보(忠州池氏大同譜)에는 지경(池鏡)의 아들에 찬성사(贊成事:문하부의 정2품 부총리)를 지낸 지해관(池海貫)과 평장사(平章事:중서문하성의 정2품부총리)를 지낸 지도관(池道貫)형제가 있고,지해관의 아들로 안렴사(安廉使:지방장관으로 절도사.안찰사)를 지낸 지윤(池胤),부원수(副元帥:전시에 두던 임시벼슬 상원수 다음)를 지낸 지영(池瀛)형제가 있으며,부원수 지영의 아들에는 평장사(平章事:중서문하성등의 정2품부총리)를 지낸 지득상(池得尙)과 찬성사(贊成事:고려때 문하부 정2품부총리)를 지낸 지응상(池應尙)이 있으며 지득상의 손자가 평장사(平章事:정2품) 지종해이고,지응상의 손자가 지중익,즉 평장사(平章事:중서문하성 정2품부총리)를 지낸 어중익으로 기록되어 있다.시조 지경의 묘는 평안도 중화 당악산 화산정에 있다. 지씨는 고려조에 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 거족으로 발전하였는데 고려말 지문사걸(池門四傑)이라 하여 원(元)의 세력과 왜구(倭寇),홍건적(紅巾賊) 등을 물리치는데 공(功)을 세운찬성사(贊成事:정2품부총리)지윤(池奫),상원수(上元帥)충의공(忠懿公)지용도(池龍圖),충무공(忠武公)지용수(池龍壽)형제및 충원부원군(忠原府院君)지용기(池湧奇)등이 있다.지윤(池奫)은 우왕때 서북면도원수(都元帥:전시에 두던 임시총사령관)가 되었고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정2품 부총리)에 올라 명성을 떨쳤다.특히 지용수(池龍壽)는 고려 공민왕때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서북면지방에 두어 병마를 지휘하던 종2품)로 홍건적을 물리쳐 1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또한 지용기(池湧奇)는 고려 우왕때 이성계 휘하에서 위화도 회군에 참가하여,후에 충원부원군(忠原府院君)에 봉해져 충주지씨(忠州池氏)가문을 빛냈다.효행(孝行),충절(忠節),문학(文學)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던 충주지씨는 임진왜란때 공을 세운 판결사(判決事노비문서 등을 관장한 장례원의 정3품) 지하복(池河福),분의장(奮義將) 지달원(池達源)과 별장(別將:용호영의 종2품,산성.포구.소도 등의 수비를 맡던 무관의 종9품)을 거쳐 철산도호부사(都護府使:도호부를 다스리던 종3품)로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에서 청군과 싸우다가 순절하여 병조참판(兵曹參判:종2품국방장관)에 추증된 지여해(池汝海)등이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이다.문장에도 뛰어나 학명으로도 이름이 높았던 지달원(池達源)은 임진왜란때 함경도에서 정문부(鄭文孚:북관대첩비의 주인공,2006년 일본에서 승전비를 100년만에 반환해옴,해주정씨 참조).최배천 등과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다.이밖에 충성군(忠城君) 지계최(池繼 )가 도원수(都元帥:총사령관) 장만(張晩)휘하에서 활약하였으며,지덕해(池德海)는 병자호란때 큰 공을 세워 이름을 날렸다.구한말에 널리 알려진 지석영(池錫永)은 충주지씨가 자랑하는 근대 인물이다.그는 우두법을 처음으로 보급한 의학자로 유명하다.지석영은 1876년(고종13) 수신사(修信使:고종 13년 이후에 일본에 보내던 사신) 김기수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종두법을 배워 온 박영선에게 종두법을 익혔으며 김홍집(조선 마지막 영의정이자 초대 총리대신)을 따라 일본에 건너가 우두법을 익히고 돌아왔다.전주(全州) 등지에서 우두국을 설치하여 종두의 전국 보급을 시작하였으며 <우두신설>을 저술하여,국민보건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또한 그의 형인 지운영(池運永)은 학문과 예술에 정진하여 시·서·화의 삼절로 불리워졌으며 특히 서화가(書畵家)로 유명했다.한말의 의병장 지홍문은 1907년(순종1) 군대 해산령이 내리자 의병을 일으켜 강화 갑곶(江華甲串)에서 일본군 1개 중대를 섬멸했으며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지청천(池靑天:일명 이청천)은 3·1운동이 일어난 뒤 만주로 망명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고,청산리 전투후에는 일본군의 보복작전을 피해 흑룡강으로 이동하여 김좌진 등과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여 항일전을 수행하였다.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이 수여되었고 일본군에 의한 만주대학살때 순국한 지하영(池霞榮)과 함께 명문 충주지씨 가문을 더욱 빛냈다.충주지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문관을 뽑기 위하여 보던 과거로 대과)10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였으며 3년마다 보았음)에 39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는 시험)에 31명,역과(譯科:중국어.몽고어.일본어.여진어에 능통한 사람을 역관으로 뽑기 위하여 보던 과거)에 1명,음양과(陰陽科:천문.지리.명과학(命課學)에 밝은 사람을 뽑기 위하여보던 과거)에 14명,율과(律科:형률에 능통한 사람을 등용하던 과거)에 5명 등 100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인구조사에서 충주지씨는1985년에는 28,314가구에 118,430명,2000년에는 36,937가구 118,211명이었다.충주(忠州)는 충청북도 중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983년(성종2)충주목(忠州牧)이 되었다. 995년(성종14) 창화군(昌化軍)으로 바꾸고 절도사(節度使:종2품)를 파견하여 중원도(中原道)에 속하게 하였다. 1395년(태조4)에 충청도관찰사를 두었으며,1896년 13도제 실시로 충주부가 폐지되었고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08년(순종 2)도청을 청주로 이전시키고 군수(郡守:종4품수령)를 두었으며,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하여 충주시가 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288-831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