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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암 송시열은 우리나라 학자 중 유일하게 자(子)를 붙인 인물동춘당 송준길 등 배출,우리나라 송씨의 32%,조선조 과거시험에 296명은진송씨(恩津宋氏) 도시조(都始祖:처음시조)는 중국의 경조(京兆)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호부상서(戶部尙書:고려때는 정3품 장관)를 지낸 송주은(宋柱殷)으로 되어 있으나 언제,어떻게 고구려,백제,신라 3국 중 어느 나라에 귀화했는지 기록이 없다.그의 7대손인 송순공(宋舜恭)의 후손 송자영(宋自英:서산군(瑞山君)이 송유익(宋惟翊),송천익(宋天翊),송문익(宋文翊)등 세 아들을 두었는데,송유익은 여산송씨의 시조(始祖)로 송천익은 은진송씨의 비조(鼻祖)로 송문익은 서산송씨(瑞山宋氏)의 시조가 됐다고 한다.은진송씨의 시조 송대원은 비조(鼻祖)송천익의 후손으로 대대로 은진(恩津)에서 살아왔으나 송천익 이후의 대를 알 수 없어 고려때 판원사(判院事:고려때 중추원 등의 종2품)를 지내고 은진군에 봉해진 송대원을 시조및 1세조로 받들고 본관을 은진(恩津)으로 정했다.시조 송대원의 6대손인 송유(宋愉)의 후대에 송계사(宋繼祀).송계중(宋繼中)형제에서 송계중이 사직공파(司直公派),송계사의 아들 송요연(宋遙年).송순연(宋順年)이 각각 목사공파(牧使公派).정랑공파(正郞公派)로 크게 분파되었고 후대에서 다시 50여파로 갈라진다.조선시대에 상신(相臣:정1품영의정.좌의정.우의정) 2명,대제학(大提學:홍문관.예문관 정2품 문형)1명,호당(湖堂:문과 급제자중 덕행과 능력이 뛰어난 인물을 선정하여 연구 시킴,대제학에 오르려면 호당 출신이어야 했음) 3명,문과급제자 74명을 배출하는 등 많은 학자와 명신을 배출했는데 목사공파(牧使公派)와 정랑공파(正郞公派)에서 인물이 많이 나왔다.목사공파에서는 동춘당 송준길(宋俊吉)과 송규렴(宋奎濂).송상기(宋相琦)부자(父子)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송준길은 당대를 대표하는 성리학자로서 대사헌(大司憲: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던 사헌부의 수장으로 종2품 검찰총장),병조판서(兵曹判書:정2품국방장관),이조판서(吏曹判書:정2품장관) 등을 역임하였고,송규렴은 대사간(大司諫:사간원의 정3품),대사헌(大司憲:백관을 규찰하던 사헌부의 종2품,검찰총장,감사원 감사위원),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왕명을 출납하고 궁중을 숙위하던 중추부에 속한 종2품)등을 지냈는데, 서예에 능하고 학문이 뛰어나 송시열.송준길과 더불어 "3송(宋)"으로 불렸다.아들인 송상기(宋相琦)는 노론(老論)의 중신(重臣)이었으며 대사헌(大司憲:사헌부의 종2품 검찰총장).대제학(大提學:홍문관.예문관의 정2품문형).예조판서(判書:정2품장관)등을 역임하고 신임사화(辛壬士禍:1721년(경종1)노론과 소론사이의 대립에서 왕통문제와 관련하여 소론이 노론을 숙청한 사건)때 유배되어 사망했다.이밖에 송명흠.송문흠 형제가 문장과 서예로 명성을 떨쳤으며 정랑공파의 인물은 노론(老論)의 영수 우암 송시열(宋時烈)을 비롯하여 송인수(宋麟壽).송기수(宋騏壽).송덕상(한성부 좌윤.이조판서 지냄).우찬성(右贊成:의정부 종1품)에 오른 송환기와 당대의 대학자인 송치규.좌의정(左議政:정1품 정승)에 오른 송근수 등이 유명했다.송시열은 인조때 36세로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효종 때 이조판서,현종때 좌.우의정(左.右議政:정1품 정승)을 역임했는데 숙종때 서인(西人)이 노론.소론으로 갈리면서 노론의 영수가 되었으며,왕세자 책봉 문제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서울로 가던 중 전북의 정읍(井邑)에서 사약(賜藥)을 받았다.그때의 야사(野史)가 지금도 논산시 노성면 일대에서 전하는데, 노성 '궐리사'에서 전사관(典祀官:나라의 제사 및 향교의 제사에 쓰는 물건을 맡아보던 관직,또는 역할을 하는 자리)을 지낸,김재규(金宰圭,노성면 구암리3) 전사관의 전언에 의하면,노론(老論)의 영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은 83세에 명을 달리했다. 정읍에서 숙종이 내린 사약을 마시고서였다. 첫 사발을 마셨을 때 끄떡도 하지 않아, 세 사발이나 마시고서야 비로소 숨을 거뒀다고 한다. 우암은 평소 엄동설한에도 추위를 모를 정도로 원기가 왕성했다고 한다.김재규 전사관은 "우암은 매일 어린아이의 소변을 받아마셨다고 합니다. 즉 한의학용어로 '요료법(尿療法)'을 실행했다“며, 구전되는 이야기를 전했다. 한의학에서는 어린아이의 소변이 화기(火氣)를 내리고, 어혈을 풀어주는 것으로 보는데, 의학에 밝았던 우암 송시열은 이를 알고 있었던 듯하다. 소변에는 면역기능을 강화시키는 물질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실제로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당시 의원을 능가할 정도로 의학 공부를 했다고 사료에 전한다.한편,송인수는 1545년(인종1) 을사사화(乙巳士禍:1545년(명종 원년) 윤원형(尹元衡)일파 소윤(小尹)이 윤임(尹任)일파 대윤(大尹)을 몰아내어 사림이 크게 화를 입은 사화)때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종2품 서울시행정부시장)으로 있다가 파직되어 사사(賜死)되었다.송병선(宋秉璿)은 고종때 대사헌(大司憲:백관을 규찰하던 사헌부의 종2품 검찰총장)을 지내고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자결하였다.은진송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78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1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216명,음양과에 1명 등 296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2000년 인구조사에서 은진송씨는 208,816명으로 송씨의 32,8%를 차지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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