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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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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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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의태자 김일(金鎰)의 후예 천년사직의 전통부안김씨(扶安金氏)의 시조는 마의태자(김일金鎰)이다.마의태자는 신라 경순왕의 첫째 아들로 935년(경순왕9) 신라의 국운이 기울어 부왕(父王)인 경순왕은 천년사직 신라를 고려에 양국하려 하자 신하들의 찬반양론이 분분한 가운데 태자(太子) 김일은 "국가의 존망은 반드시 하늘의 뜻인데 당연히 충신.의사들과 더불어 민심을 수습하고 굳게 지키다가 힘이 다 한 연후에 의존함이 옳은데 어찌 천년사직을 하루아침에 경솔하게 다른사람에게 줄 수있습니까"하고 고려에의 양국에 극력 반대하였다.935년(경순왕9) 10월,신라는 후백제 견훤(甄萱)과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신흥세력에 더이상 대항할 길이 없자 군신(君臣) 회의를 열고 고려에 손국할 것을 논의하여,결국 고려에 귀부(歸附)를 청하는 국서(國書)가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를 시켜 전달되었다.이에 태자인 김일(金鎰)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어머니 죽방왕후 박씨(竹房王后 朴氏) 태자비 김씨(太子妃 金氏), 그리고 두 아들과 충신(忠臣),의사(義士),유민(遺民) 등 수만명을 거느리고 설악산 근처 인제군 상남면 금부리(金富里) 부근에 신라소국(新羅小國)을 세워 조국광복을 도모하는 항려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태자(太子) 김일(金鎰)은 신라 망국을 조상하는 뜻으로 평생을 마의(麻衣)로 지냈다 하여 마의태자(麻衣太子)라 부른다.그가 사망 후 고려조에서는 태자공(太子公)의 항려운동을 은폐 축소하고 특히 일제강점기에 태자공의 조국광복정신을 은폐하기 위해 금강산에 단신으로 입산하여 마의 초식으로 일생을 지낸것으로 왜곡하였으나 최근 강원도 인제군 삼남면 김부리와 갑둔리 일대의 유적들은 태자공(太子公) 김일의 천년사직 신라 부흥을 위한 항려투쟁을 웅변해주고있다.그의 5세손 김경수가 고려 선종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이부상서(吏部尙書:정3품 장관)를 거쳐 우복야(右僕射:상서도성의 정2품부총리)에 올라 유명하였고,김경수의 아들 김춘이 부령부원군(扶寧府院君:부령은 부안의 예전지명)에 책봉(冊封)되어 부령을 식읍(食邑:나라에 공이많은 사람에게 고을의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게 하는곳)으로 하사 받았기에 본관을 부령으로 하였다.후손들은 김일(金鎰)을 시조 김경수를 1세조로 받들고 본관을 부안(扶安,부령)으로 삼아 계세(系世)해 오고 있다.조선조 서기 1416(태종16)에 부령현(扶寧縣)과 보안현(保安縣)을 합쳐 부안군(扶安郡)으로 되자 부안김씨(扶安金氏)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부령김씨(扶寧金氏)라고도 한다.인구조사에 따르면 부안김씨(扶安金氏)는1985년에는 11,263 가구,47,696명이었으며,2000년에는 17,391가구,56,318명이었다.전북 장수군 산서면 사상리.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남원시 이백면 강기리.정읍시 소성면.산내면 부안읍 일대가 집성촌이며,중부권은 충남 논산시.충남 당진군 대호지면 두산리.출포리이며,충북 충주시.음성군.진천군 등지이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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