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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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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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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안계씨는 각종문헌과 수안계씨계축보(遂安桂氏癸丑譜)에 의하면, 우리나라 계씨(桂氏)의 연원을 중국 천수(天水:감숙성 남쪽 위하 유역에 있는 지명) 출신인 계석손(桂碩遜)에 두고 있다. 계석손은 명나라에서 예부시랑(禮部侍郞:고려시대에는 6조와 6부의 차관)을 지내고 고려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나라에 공을 세워 수안백(遂安伯)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계석손(桂碩遜)을 시조로 받들고 관향을 수안(遂安)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선천장파(宣川長派).군현파.태산파(台山派) 등 12파로 분파되었으나 나머지는 <수안계씨>후손들의 세거지명이라고 한다.평안도 선천(宣川)과 황해도 곡산(谷山)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관서지방의 명문중으로 기틀을 다져온 수안계씨(遂安桂氏)는 시조 시랑공(侍郞公)의 아들 계원우(桂元祐).계원조(桂元祚).계원제.계원겹 4형제 대(代)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큰 아들 계원우가 합문지후(閤門祗候:조회의 의례를 맡아보던 관청.지후는 정7품)을 지냈고 그의 아들 계문식(桂文植)은 우대언(右代言:왕명의 하달을 맡은 벼슬)을 역임하며 왕명(王命)으로 궁중의 출납을 맡았다.한편 계원조(桂元祚)의 셋째 아들 계양춘(桂陽春)은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병서와 무예)에 급제하여 첨사(僉使:절도사 밑의 종3품)를 지낸 후 강화로 들어가 강화파(江華派)의 파조(派祖)가 되었으며 계원제의 후손에서는 강동파(江東派)를 비롯한 영유(永柔),증산(甑山),용강(龍岡) 등 7파로 분파(分派) 되었다. 그러나 계원겹의 후손들은 평양지방에 산거(散居)하며 세계(世系)를 이었으나, 보첩수단(譜牒收單) 과정에서 12세의 선계(先系)를 실전(失傳:고적이나 묘지등이 대대로 전해온 사실을 알 수 없게 됨)하여 미상이라고 한다.수안계씨는 1930년 일제강점기때 국세조사에서 총 2,231가구로 성별 순위는 82위였는데, 그 중 약 90%가 평안도 지방에 살고 남한에는 166가구가 살았다.2000년조사에는 1,951가구에 6,242명이었다.한편 선천계씨가 2000년 조사에서는 2가구 7명이었고, 수원계씨도 1명이었으며,연안계씨도 2000년 조사에서는 1가구 4명이었으며, 황주계씨도 1가구 3명이었다.수안(遂安)은 황해북도에 있는 지명으로,1417년(태종17) 수안군(遂安郡)이 되었다가 1653년(효종4)현으로 강등되었었다. 1954년 곡산군 서초리가 평원리에 흡수되었고 용포리의 일부를 좌위리로 옥치리의 일부를 도전리로 도전리.산북리의 일부를 용현리에 흡수하였다. 1963년 산북리.석교리의 일부를 분리하여 주경리를 신설했고, 1974년 조양리를 옥치리에 통합시키고 조양리는 폐지하였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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