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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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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공의는 고려조에 정승(종1품재상)을 지냈다.1985년에는 인구가 100명이 있었다.안록산(安綠山)의 난"안사의 난"이라고도 한다. 서기 755년 당나라의 절도사(節度使) 안록산이 난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의 부장 사사명(史思明)이 뒤를 이어 반란을 주도 했기에, 둘을 합쳐 '안사의 난' 이라고 한다.안록산은 당나라 10개의 절도사 중 범양(范陽).평로(平盧).하동(河東) 세곳의 절도사를 겸했고 20여만의 최정예 병력을 휘하에 두고 있었다.755년 안록산은 난을 일으켜 당의 동쪽 서울인 낙양을 함락하고, 수도 장안을 점령하여 기세를 올리게 된다. 안록산의 반군이 장안으로 들어오기전 조정에서는 고구려 유민 출신의 유명한 고선지(高仙芝)대장군(大將軍)에게 수비를 명했으나 간신들의 참소로 고선지가 처형되고 후임자인 절도사 가서한(可舒翰)의 참패로 장안이 함락되자 황제인 당 현종은 사천지방으로 피난했고 황태자가 숙종으로 즉위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시작하게 된다.한편 이 시기에 고구려 유민의 아들로 조국을 멸망시킨 당의 심장부에 독립정권을 세우고 수도 장안을 한 때 공황상태로까지 몰아 넣은 영걸 이정기(본명은 회옥)장군에 대한 신당서(新唐書)의 기록이 나온다.담대한 용력으로 '안록산의 난'을 토벌하여 입신하게 되며 그는 장손,차손으로 이어진 4 대 55년간 당(唐)의 중앙정부와 대립적인 독립 왕국을 건설했으며 당나라 조정도 원래 이름인 회옥 대신 정기(正己)라는 이름을 내리고 "평로치청절도관찰사"겸"해운압발해 신라양번사"라는 관직을 주고 이어 이정기에게 "요양군왕(饒陽郡王)에 봉하는 무마책을 썼다.안진경,이광필,곽자의 등의 의병투쟁 등으로 고립되기 시작한 안록산은 내분이 일어나, 아들 안경서(安慶緖)에게 살해되고, 안경서는 다시 사사명에게 살해당했으며, 장수들의 배신이 속출하게 되자 당나라는 위그르 용병까지 고용해, 전국에 절도사(節度使)를 설치해서 군사력을 증강 배치했다.763년 아버지 "사사명"을 살해하고, 뒤를 이어 반란을 지휘했던 사사명의 아들 사조의(史照義)를 제거하고 당은 가까스로 난을 진압했다.이 "안사의 난"으로 당나라는 체제가 크게 변화하고, 각 지의 절도사(節度使:조선때 직제로 보면 절도사는 지방장관.종2품 병마사)들이 난립하면서 멸망의 단초를 열게된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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