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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씨

    전(全)

    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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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전씨(全氏)는 광산전씨.정선전씨.감천전씨.강릉전씨.강원전씨.개성전씨.거창전씨.경산전씨(시조-전영령,인구는14,742명).경성전씨.경주전씨(시조-전공식,6005명).계림전씨.고령전씨.고부전씨.공주전씨.기장전씨.김녕전씨.나주전씨(시조-전경,인구는5,169명).성주전씨(시조-전순,인구 4,654명).성산전씨(시조 전흥,인구 8,738명).옥산전씨(15,659명).완산전씨(시조-전집,인구는7,568명).죽산전씨(시조-전한,인구11,229명).천안전씨(133,074명)등 73본관으로 조사되었으며,문헌에는190여본이 전하나 17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모든 전씨(全氏)는 도시조 전 섭의 후손으로 같은 뿌리이다. 전씨 인구는 2000년 조사때는 493,419명이었다. 전씨(全氏)의 도시조 전섭(全攝)은 백제건국에 공을 세우고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이후 도시조 전섭의 후손들이 천안시 풍세면 지역에 집중세거하게 되었다.전씨의 도시조(都始祖) 환성군 전섭(全攝)단소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 산15-1 번지에 있다. <계유명아미타불삼존석상>은 1960년 9월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다방리 사방골의 비암사(碑巖寺)에서 기축명아미타불상과 함께 발견되었다. 석상은 처음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겼다가 현재는 국립청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국보 제106호> 석상은 덮개돌, 비신(碑身), 받침돌로 이루어진 불비상(佛碑像) 가운데 비신에 해당하는 것이다. 석상의 각 면은 불상과 무늬로 가득 차 있으며, 글은 앞면의 밑 부분과 양 측면, 뒷면에 새겼다. 마멸이 심하여 대부분의 글자를 읽을 수 없다. 판독 가능한 글자에 따르면, 서기673년(문무왕 13) 4월 15일에 50인의 신도가 국왕, 대신 및 7세부모와 모든 영혼을 위하여 사원을 짓고, 석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글 가운데에 백제유민으로 추정되는 <전씨(全氏)> 및 백제관등인 달솔(達率) 등의 표현이 보여 불비상(佛碑像)을 만든 주체가 백제유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석상은 계유명삼존천불비상과 더불어 삼국통일 직후의 사회상과 불교신앙을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와같이 백제 멸망 10년후인 673년에 건립된 국보 제106호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 삼존석상.국립청주박물관 소장>의 기록에 전씨(全氏)가 백제시대에 성씨(姓氏)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 전씨(全氏)는 약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증보문헌비고:상고시대부터 한말까지 문물제도를 총망라한 책>에는 정선전씨(旌善全氏)의 도시조 전섭(全攝)은 백제 건국에 공을 세워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으며, 전섭(全攝)의 8세손 전선(全渲)이 신라 내물왕 때 대광공주(大光公主)를 배행(陪行:윗사람을 모시고 따라감)하고 신라에 들어와 봉익대부(奉翊大夫:고려때 문관의 품계)로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왕명을 출납하던 밀직사의 정3품)를 지냈으며,이후 전법판서(典法判書:고려때 형조의 정3품 법무장관)에 올라 정선군(旌善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정선군의 후손들이 전선(全渲)을 1세조로 받들고, 정선(旌善)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오면서 우리나라 전씨의 시원(始源)을 이루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씨(全氏)는 정선전씨(旌善全氏)을 대종(大宗)으로 하고 천안.용궁(龍宮).경주.기장(機張).완산.나주.죽산(竹山).성주(星州).황간(黃澗).안동.옥천(沃川).옥산(玉山).함창(咸昌).성산(星山).평강(平康).팔거(八 ).부여전씨(扶餘全氏) 등 17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문헌에는 총190여 본이 전하나 같은 뿌리라고 한다. 전씨대동보(全氏大同譜)에서는 정선파.천안파(天安派).용궁파(龍宮派)등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모든 전씨는 전섭(환성군 歡城君)을 도시조(都始祖)로 받들고 있다.전씨세보(全氏世譜)에 의하면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주몽)의 셋째 아들 온조(溫祚)가 10명의 신하를 이끌고 남천(南遷)하여 부여(扶餘)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건국하였는데 전섭도 그들 10신(十臣:10제 공신)의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전씨(全氏)의 세계(世系)는 후대로 오면서 여러 관(貫)으로 분파되었는데 신라 때 분파된 <정선전씨>와 조선시대에 분파된 <부여전씨>이외의 나머지 16파는 모두 고려 후기에 분파된 것이라고 한다. 전씨관면록(全氏冠冕錄)에는 전씨(全氏)는 봉군(封君)된 인물이 35명이었으며 정승(政丞:정1품 재상) 12명,상서(尙書:장관) 43명,참판(參判:차관) 4명,대장(大將) 7명,병사(兵使:병마절도사.종2품 벼슬).수사(水使:수군절도사.정3품) 4명 등을 배출했는데 이들은 고려시대와 그 이전의 인물들이다. 1975년 인구조사에서는 62,816가구에 가구 구성비 0.9%로 당시의 249성씨 중 제22위였고 1985년의 조사에서는 103,059 가구에 인구는 43만 55명으로 당시의 274성씨 중 제21위였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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