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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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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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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김씨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대장군(大將軍:무관 종3품)을 지낸 김윤성(金允成)의 아들 김인궤(金仁軌)를 시조(관조(貫祖)는 김육화)로 받든다.그는 고려때 조현대부(朝顯大夫:충렬왕때 종4품문관)품계로 전법총랑(典法摠郞:전법사는 법률,소송,형옥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로 총랑은 정4품 법무차관),호군(護軍:정4품장군).전객령(典客令:고려때 빈객의 연향등을 보던 전객시의 벼슬)을 지내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고려 문신(文臣)관계로 종2품에서 종1품)로 문하시중(門下侍中:백관을 통솔하던 문하성의 종1품 정승)에 이르렀으며,그의 후손 김육화(金育和:초명은 김숙화)가 고려때 은자광록대부(銀紫光祿大夫),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종2품 품계)로 상장군(上 將軍:정3품)이부서(吏部尙書:정3품 장관).좌복야(左僕射:상서도성의 정2품부총리)등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경산군(慶山君)에 봉해졌기에 후손들이 본관을 경산(慶山)으로 했다.조선시대에 경산김씨는 문과(文科:대과)에 1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1명,율과(律科:형률에 능통한 사람을 등용하던 시험)에 1명 등 3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한편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 김추(金錘,:선산김씨(들성)시조)의 10세 김인궤(金仁軌)를 시조로 받드는 문헌도 있으며 1320년(고려 충숙왕 7)에 찬성사(贊成事:문하부의 정2품부총리)를 지내고 경산군(慶山君)에 봉해진 김이(金怡 :1265∼1327)를 시조로 기록하는 문헌도 있다. 그리고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김한(金翰)을 시조로 기록하고 있다.경상북도 경산은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하양.자인군 등을 경산군으로 병합하였고 1956년 경산면이 경산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9년 경산시로 승격되었고 1995년에 경산군을 통합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경산김씨는 2000년에는 2천 3백여가구 7천 5백여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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