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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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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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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김씨는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의 9세손으로, 고려의 명신이며 시인(詩人)으로 이름을 날린 김황원(金黃元,시호는 문간)을 시조로 받든다.김황원은 서기 1045년(고려 정종11)에 출생하여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문장이 뛰어나 고시(古詩)로 명성을 떨쳤으며, 청렴강직 했다고 한다. 그는 한림원(翰林院:임금의 명을 받아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아본 관청)에 있을때, 요나라의 사신을 맞아 문장과 시(詩)로 크게 감동시켰다고 하며 그를 시기한 재상 이자위의 모함으로 한 때 파직되기도 했었다.고려 선종에 의해 좌습유(左拾遺:중서문하성의 종6품)와 지제고(知制誥:고려때 국왕이 반포하는 조서.교서 등의 글을 지어 바치는 일을 맡아보던 보문각.한림원의 관원이 겸직하던 관직)에 등용되었으며,후에 경산부사(府使정3품 수령)로 나가 많은 치적을 남겼다. 예종때에는 중서사인(中書舍人:중서문하성의 종4품)이 되어, 사신으로 요나라를 가던 길에 북부지방의 대기근으로 인한 백성들의 참상을 목격하고 주(州)와 군(君)의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제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예부시랑(禮部侍郞:정4품차관)과 국자제주(國子祭酒: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관청의 벼슬),한림학사(翰林學士:한림원에서 임금의 조서를 짓는일을하던 2품~4품)등을 지내고, 첨서추밀원사(僉書樞密院事:왕명의 출납과 숙위.군기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추밀원의 정3품)로 치사(致仕:벼슬을 사양하고 그만둠)하였다. 후손들은 시조가 살던 광양을 본관으로 하였다.광양(光陽)은 전라남도 남동부에 위치하며,940년(태조23)에는 광양현(光陽縣)으로 고치고,승평군의 관할로 두었다.1598년(선조31)순천도호부에 임시로 편입되었다.1895년(고종32) 광양군이 되었고,1949년 광양면이 광양읍으로 승격,1995년 광양군과 동광양시가 통합하여 광양시가 되었다.인구조사에서 광양김씨(光陽金氏)는 1985년에는 143가구 632명,2000년에는 540가구에 1,987명이었다.광양김씨는 조선시대에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4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1명 등 5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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