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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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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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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김운발 부자(父子)가 정승(政丞)에 올라 명성 떨쳐1천년 왕조의 전통, 부부가 나라위해 싸우다 순절나주김씨(羅州金氏)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인 김굉의 큰 아들 김운발(金雲發)이다. 조선씨족통보의 기록에 의하면 김 굉은 신라가 고려에 나라를 손국하자 해인사로 들어가 삭발을 하고 법명(法名)을 범공(梵空)으로 하여 불가에 귀의하였는데 그가 불가에 귀의 하기전에 고려 조정에서는 두 아들을 예우하여 첫째 김운발은 문하시중(門下侍中:백관을 통솔하던 종1품 정승)으로 나주군(羅州君)에 봉하고 둘째 김우발은 경주군(慶州君)에 봉했다고 한다. 김운발이 나주군(羅州君)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본관을 나주(羅州)로 삼았다.한편 시조 김운발의 묘는 개성시 북쪽 오룡산에 있다고 한다.나주김씨(羅州金氏)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8명,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27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37명,역과(譯科:중국어.몽고어.여진어.일본어에 능통한 사람을 역관으로 뽑기 위해 보던 과거)에 9명 등 81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나주(羅州)는 1895년(고종32)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羅州府)로서 나주군(郡)을 관할하였고,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로 개칭되었으나,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어 나주시로 개편되었다.인구조사에서 나주김씨는 1985년에는 9,780가구에 41,257명이었으나,2000년에는 14,380여가구에 총 46,000여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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