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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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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당(玉堂)은 정씨의 세전물최초의 가사(歌辭) 작가 정극인(丁克仁)최고의 <어류학서>편찬,고등어의 회유를 밝힌 정약전과다산 정약용우리나라 정씨(丁氏)는 나주정씨.창원정씨.영광정씨.의성정씨의 4본이 있으나,모두 도시조(都始祖)인 정덕성(丁德盛)의 후손이다.정씨(丁氏)의 도시조 정덕성(丁德盛.대양군)은 당나라 사람으로 당나라 문종(文宗)때 대승상(大丞相)을 지내고 무종(武宗)때 대양군(大陽君)에 봉해졌는데,서기 853년(당나라 선종 대중7,신라 문성왕15) 직간(直諫:바른말)을 하다가 압해도(押海島)에 유배되어 정착해 우리나라 정씨(丁氏)의 시초라고 한다.대양군 정덕성(丁德盛)은 서기 800년,당나라 등주 남양(南陽) 대천리(大川里:중국 하남성 남양시 당하현 대하둔) 정영(丁營)마을에서 태어나 최연소의 나이로 진사과(進士科),명경과(明經科:장상(將相)의 재목을 뽑는 과거이며 조선.고려때는 명경과 합격자에게는 등과전(登科田)을 주어 과거 응시를 장려함)30명중 19번째로 급제하여, 태자궁 설서(說書:태자시강원의 정7품으로 태자에게 도의와 경서를 가르침)를 지냈다. 이후 회서(淮西) 오원제(吳元濟)의 반란을 태자궁 첨사(詹事:고려때는 동궁의 서무를 관장하던 종3품) 이 소와 더불어 평정한 공으로 현백(縣伯)의 작위와 식읍(食邑) 700호를 받아 승상(丞相:중국의 벼슬로 우리 의 정1품정승)에 이르렀다고 한다.당나라 선종때 국가의 중대사에 바른 말로 직언 상소한 것이 당시 조정의 노여움을 사서 서기 853년 찬류(竄流),아들 열도(烈道).응도(應道) 손자 필랑(必琅).필진(必珍)등 온 가족을 황하강에서 배에 싣고 황해바다를 건너 압해도에 도착,이곳에 정착하자 당시 신라 조정에서 신라 서울에 들어와 살기를 권하였으나, 본국의 죄인이라 자처하며 굳이 사양하였고, 중국에서도 입조(入朝) 권고의 칙서가 왔으나, "노약한 몸으로 배를 탈 수 없고 이 나라도 예의 바른 나라이니 이곳에 그대로 머무르게 하소서"라며,우리나라에 정착했다.그는 893년 94세의 천수(天壽)를 누리고 생을 마쳐 압해도 정승동에 안장되었다.결국 압해(押海) 정승동은 우리나라 정씨(丁氏)의 발상지가 되며,정씨(丁氏)의 4본은 모두 같은 뿌리이고, 그 중에서 나주정씨(羅州丁氏)가 전체 정씨(丁氏)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나주정씨(羅州丁氏) 시조는 정윤종(丁允宗)이다.시조 정윤종은 고려시대에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종3품 무관,검교는 벼슬앞에 붙이는 명예직으로 관원의 승진이 누적되어 관직만 줄때 검교를 붙임)을 지냈다.나주정씨 족보인 경오보(庚午譜) 서문에는 나주정씨(羅州鄭氏)는 고려조에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종3품 명예직)을 지낸 정윤종(丁允宗)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며 시조의 상계(上系)에 관한 언급은 없다.그런데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청구영언(靑丘氏譜) 등 옛 문헌에도 정씨(丁氏)의 대조(大祖)는 대양군(大陽君) 정덕성(丁德盛)으로 나오며 당나라 사람으로 대상(大相)의 자리에 있다가, 당나라 선종7년(신라 문성왕15)에 우리나라 압해도(押海島)로 귀양 온후 사면되었으나, 돌아가지 않고 신라에 귀화하여 그 자손들이 압해도에 세거하게 되어 우리나라 정씨(丁氏)의 연원을 이루게 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나주정씨(羅州丁氏)는 조선 숙종과 경종 연간까지 관향을 압해정씨(押海丁氏)로 써오다가 영조때 압해(押海)가 폐현되어,나주(羅州)에 부속하게 되자 관향도 나주(羅州)로 고치게 되었다고 한다.숙종때의 신사보(辛巳譜)와 고종때의 경오보(庚午譜)에 나주압해정씨족보(羅州押海丁氏族譜)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나주정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자급(丁子伋)이 교리(校理:홍문관,승문원의 정5품)를 지냈고 그의 아들인 정수강(丁壽崗)은 중종때 형조판서(刑曹判書:정2품 법무장관)와 병조판서(兵曹判書:정2품 국방장관).예조판서(禮曹判書:정2품 장관)를 거쳐 좌참찬(左參贊:의정부 정2품)에 올라조선시대에 정씨가문의 중흥이 일기 시작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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