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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문중

    김(金)

  • 유래

    남양(南陽)은 수원시와 화성시 일원을 포함한 지역의 옛 지명으로,고구려때에 당성(唐城)이었고,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는 당은(唐恩)으로 하였다가,1310년(충선왕2)에 남양(南陽)으로 개칭되었다. 남양김씨(南陽金氏)는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金首露王)의 후예(後裔)로서 고려 의종(毅宗:제18대왕,재위:1146~1170)때 사람인 김적을 시조(始祖)로 하여 왔다. 그는 나라에 변란이 있음을 미리 알고 가족과 함께 남양(南陽)의 산곡(山谷)에 이거(移居)하여 살았으나, 그후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대대로 이어온 사적이나 묘지를 알수없게 됨)되어 정확한 계대(系代)를 알 수 없어 후손들은 태조를 도와 조선개국에 공을 세워 남양백(南陽伯)에 봉해진 김약해(金躍海)를 1세조로 받들고,남양(南陽)을 본관(本貫)으로 하였다.김약해(躍海)의 아들 김계(金桂)는 1436년(세종18)에 출생하여 성종(成宗:9대왕,재위:1469~1494)때 성균진사(成均進士)가 되었으나,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戊午史禍1498년(연산군4)에 류자광 등의 훈구파가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사림파에 대해 일으킨 사화)로 인하여 김일손(金馹孫)을 비롯한 신진사류(新進士類)가 류자광(柳子光) 중심의 훈구파에 의하여 화(禍)를 입을 때 연루되어 평안도 정주(定州)에 유배되어 후손들이 그 곳에서 정착세거하게 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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