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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김씨 시조 김달(金達)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후손인 김방경(안동김씨(구)중시조)의 넷째아들이다. 김달은 병조참의(參議:정3품국방차관보)를 지내고,경북 대구 도화촌(道化村)에 거주하였으나,1400년(정종2) 제2차 왕자(王子)의 난이 일어나자,함경도 길주(吉州)로 유배되었다.(또는 조사의(趙思義)의 난에 적극 대처하지 않았다고 태종3년에 함경도 길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그의 장남 김려연(金麗淵)의 가족이 대구에서 길주로 이주하여 살면서 고향인 대구를 본관으로 하였다.그후 시조 김달의 작은 아들 김부형(金富亨)의 손자들이 80년 뒤 연산군때 대구에서 북으로 이주하여 함경도 명천과 평안도 용천,의주 등에 살면서,평안도에 살던 계통은 김호견(金浩堅)을 중시조(1세)로 평안도계(용만파)로 하였고,김대성(김호연의 8대손)을 중시조(1세)로 하는 등 3계파로 대별되고,후대에 내려와 길주 명천파(明川派).서포파(西浦派).광화파(光化派).황주파(黃州派).고령삭파(古寧朔派).종성파(鐘城派)등 크게 여섯파로 계대(繼代)하고 있다. 대구(大邱)는 영남지방의 중앙부에 위치한 곳으로 경상도의 행정 중심지이다. 757년(경덕왕16) 대구(大丘)로 개칭 되었으며, 대구(大丘)가 대구(大邱)로 쓰이게 된 것은 1750년 (영조 26) 대구의 유생(儒生) 이양채(李亮采)가 대성(大聖) 공자(孔子)의 휘(諱)가 구(丘)자라 하여 개칭을 원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왕의 윤허를 얻지 못했다가,정조때부터 점차 대구(大邱)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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