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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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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0여년 역사 영양김씨와 영양남씨는 원조가 김충으로 같은 뿌리영양(英陽)은 경상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940년(고려 태조 23)에 영양현(英陽縣)이 되었다.영양김씨(英陽金氏)는 중국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에서 계출(系出)되었다고 한다. 영양김씨세보(英陽金氏世譜)의 기록과 문헌에 의하면, 당나라에서 형주자사(荊州刺史:지방장관으로 도독) 겸안렴사(按廉使)를 지낸 김충(金忠)이 사신(使臣)으로 일본에 가다가 풍랑을 만나 신라 인근의 해안인 경북 영덕군 축산(丑山)에 표착(漂着)하였다.이 사실을 전해들은 경덕왕(景德王:35대왕,재위:742~765)은 영양(英陽)을 식읍(食邑:고을의 조세를 개인이 받아 쓰는것)으로 하사(下賜)하고,남씨(南氏)로 사성(賜姓)하였으며, 그가 죽은 후 영의(英毅)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충(忠)의 아들 김석중(金錫中)은 아버지의 본래의 성(姓)인 김(金)을 사용하며 영양(英陽)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그의 아들 김원(金源)으로 하여금 김씨(金氏)의 혈통(血統)을 잇게 하였다.그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대대로 이어온 사적이나 묘지를 알수없게됨)되어,고려조에서 상호군(上護軍:정3품상장군)을 역임한 김충황(金忠晃)을 1세조로 받들고 관향(貫鄕)을 영양(英陽)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그러나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영양김씨(英陽金氏)를 석릉김씨(石陵金氏:안동의 별호)라고도 하며, 고창군(古昌郡) 태수(太守:지방장관)인 김선평(金宣平)의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다.영양김씨는 조선시대에 김적복(金積福)이 1454년(단종2) 식년시(式年試:3년마다보던 정기과거) 문과(文科:대과)의 정과(丁科)에 급제하는 등 2명의 문과급제자가 있다.결국 영양김씨(英陽金氏)와 영양남씨(英陽南氏)는 성(姓)은 틀리나 원조는 김충(金忠)으로 같은 뿌리다.인구조사에 의하면 1985년에는 1,641가구에 6,850명이었으며2000년에는 2,293가구 7,460여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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