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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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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김씨(永川金氏)는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이면서 1세조를 각각 다르게 받들며 서로 혈연관계를 밝힐 수 없는 4파(派)가 있다.*김철일계-김철일은 신라 경순왕의 셋째 아들인 김명종(경주김씨 영분공파의 파조)의 17 세손이다.*김온계-영천에서 살다가 김 온에 이르러 평북 가산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조상의 고향 인 영천을 본관으로 하였다.*김지식계-김지식은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라고 한다.*김영장계-김영장은 한성부윤(府尹:종2품 서울시 부시장)을 지냈다.파조의 묘소는 황해도 평산군 남천 두무리에 있다.김영장(金永長)을 시조로 하는 평산파(平山派)를 상고(詳考:꼼꼼히 살핌)하면 김영장(金永長)은 조선때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집행기구인 6방중 이방을 맡아 포폄업무담당한 종4품으로 소윤이라고도 함)을 지내고,1504년(연산군10)에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세상이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영천(永川)으로 떠나 황해도 평산군 보산면(寶山面) 두무리(斗武里)에 은거하였다.영천은 1018년(고려 현종9)에 경주에 편입되었다가,1172년(고려 명종2)에는 감무(監務:수령이 없는 속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를 두면서 독립하였고,1414년(태종14) 영천군으로 개칭되었다.1895년(고종32)경상북도 영천군이 되었고,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영천면을 신설하였으며,1995년 영천군을 영천시에 통합하였다.인구조사에서 영천김씨는 총 1,100가구에 3,540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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