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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종성(新羅宗姓)인 영해김씨(寧海金氏)는 안동김씨(安東金氏,구)에서 분적(分籍)된 계통으로서 해동(海東)의 명장(名將) 김방경(金方慶,안동김씨 중시조)의 7세손 김억민(金億敏)을 시조(始祖)로 받든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조선개국공신으로 안동군(安東君)에 봉해진 김철(金哲)의 손자로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병조정랑(兵曹正郞:관원의 천거권이있는 요직으로 정5품 전랑)을 거쳐 영해도부사(寧海都府使정3품수령)를 역임한 후 연산군(燕山君)때 화(禍)를 입고 향리(鄕理)인 함경도 단천(端川)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김억민(金億敏)의 임지(任地)였던 영해(寧海)를 관향(貫鄕)으로 삼고,김억민(金億敏)을 1세조로 받들며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함경도 학성군과 영흥군(永興郡) 일대에서 기반을 다져왔다. 그러나 1927년도에 간행(刊行)된 영해김씨족보(寧海金氏族譜)가 북한에 있기에 시조(始祖) 이하의 족파(族派)를 상고(詳考:꼼꼼히 살핌)할 수 없다. 오늘날 영해김씨는 월남(越南)한 종족(宗族) 60여 세대가 매년 한 자리에 모여 친목(親睦)을 다지고 있으며,지금까지 밝히지 못한 시조 이후의 세적(世蹟)찾기에 노력하고 있다.시조 묘소는 함경북도 학성군 학남면 금산동 동막촌 사을포산에 있다.영해는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이다.1895년(고종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영덕과 영해현은 안동부로 이관되었다가,1896년 경상북도로 관할이 변경되었다.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영해군이 폐지되고 영해면으로 축소되어 영덕군에 통합되었다.이후 1979년에 영덕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현재는 영덕군이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영해김씨는 2000년에는 총 214가구 700여명이었다.예안김씨(禮安金氏.선성)김종직.김일손 등을 신원케 한 인물 배출,일문사정(一門四旌) 정려 가문예안김씨(禮安金氏)는 김상(金尙)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시조 김상은 고려시대에 호장(戶長:고을아전의 맨 윗자리)을 지냈으며 예안에 세거하며 계세(系世)해 온 선비집안이다.시조의 선계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을축보(乙丑譜) 서문에 보면 "예안김씨의 선계(先系)는 선성(宣城)에서 나와 고려시대에 현달한 씨족으로 되었다"고 적혀있다.세록편(世綠編)에도 시조 김상(金尙)이하 4대에 걸쳐 호장을 지냈으며, 5세손 김성세(金成世)는 고려때 봉익대부(奉翊大夫:고려때 종2품 하(下)의 품계)로 상호군(上護軍:정3품 상장군)에 올라 이름을 날렸다. 예안김씨는 고려시대에 좌우위보승낭장(左.右衛保勝?將:정6품 무관으로 중랑장 아래)을 지낸 시조 8세손 김로(金輅)를 중시조(中始祖)로 받들고 있다.중시조 김로는 김소량.김숙량.김중량의 세 아들이 있는데, 김소량에게는 김증.김담.김홍 세 아들이 있어서, 각각 교리공파 문절공파 통찬공파를 형성하였으며, 김숙량의 아들 중 김신은 [참판공파], 김지는 [대사헌공파], 김비는 [장령공파]를 형성하면서 고위직에 올랐,고 김중량의 후손들은 [학생공파]를 이룩하였다.예안김씨의 인물 중 조선 세종 때의 명신 문절공(文節公) 김담(金淡)이 유명하다.그는 김로의 손자로 역수와 관상에 밝아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을 만들었으며, 일영대와 천문지 전세에 관한 법을 어명에 따라 선정하였다. 그는 문절공파의 파조이다.김담의 현손(玄孫:고손자) 김륵은 직신으로 유명했으며, 대사헌(大司憲:시정에 대한 탄핵과 백관에 대한 규찰 및 풍속을 바로잡는 종2품 검찰총장으로, 소속원인 감찰이 규찰에 나서면 왕의 아들인 대군도 감찰(監察:정6품)피해 다녔다 함)을 거쳐, 이조참판(吏曹參判:종2품 차관)에 올랐고, 광해군때 영주로 낙향하여 '천운정'을 지어놓고 당대의 석학 이수광.한석봉과 교류했다 시호는 민절공(敏節公)으로 예안김씨 가문을 크게 빛냈다.1456년(세조2)에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한 김수손은 김숙량의 손자로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성균관은 조선때 유교의 교육을 맡아보던 국립교육기관,대사성은 정3품)과 이조참판(參判:종2품 차관)을 역임하고 경국대전(經國大典:치국법전으로 세조의 명으로 노사신. 최항등이 찬정한 책으로 6권 4책)편찬에 참여 하였다.김수손의 증손 김해는 임진왜란때 상주목사(牧使:정3품 수령)로 아들 김경원과 함께 전투에서 순절(殉節:나라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림)하였다.김해는 '선무원종1등공신'으로 책록되어 <충신정문>이 세워졌고 함께 순절한 둘째 아들 성균진사(成均 進士)김경원에게도 <효자정려>가 내려졌으며 부인과 노비도 함께 순절해 <열녀문><충복문>이 함께 내려져, 한 가문에 넷이나 되는 일문사정(一門四旌)의 정려(旌閭:충신.효자.열녀 등에 대해서 그들이 살던 고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기리던 일)로 명성을 떨쳤다. 이밖에도 김흠조(金欽祖:자는 경숙 敬叔)는 1501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3년마다보던 과거로 대과)에 급제하고 검열(檢閱:예문관에서 사초를 맡아보던 정9품)을 지내고봉교(奉敎:예문관의 정7품)로서 왕에게 상소하여 갑자사화(甲子士禍:1504년(연산군 10)에 일어난 사화로 연산군이 어머니 윤씨의 폐위 사실을 알고 성종의 후궁들과 왕자 그리고 김굉필.윤필상 등 십여명의 신하를 죽인 사건) 때 화를 입은 김종직.김일손 등을 신원케하였으며 벼슬이 판결사(判決事:장례원의 정3품)에 이르러 가문을 빛나게 하였다.한편 예안김씨(禮安金氏)는 선성(宣城)에서 나왔으므로 "선성김씨" 라고도 한다.예안김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37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3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93명 등 133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예안(禮安)은 경상북도 안동의 옛 지명으로, 고려 태조때 예안군으로 승격되었고, 1413년(태종13)현으로 강등하였다가,1895년(고종32) 군(郡)이 되었으나,1914년 군.면 폐합으로 안동군에 편입되었고 일부지방은 안동 예안면(禮安面)으로 남아있다. 1995년 안동군은 안동시로 통합되었다.인구조사에서 예안김씨(禮安金氏)는 2000년에는 4,859가구 15,300명이었다.오천·연일김씨(烏川·延日金氏)연일김씨(오천김씨)의 시조 김서흥(金敍興)은 신라 경순왕의 둘째아들 김굉의 후손 김봉기(金鳳麒)의 아들 4형제중 둘째이다.그의 4세손 김예직(金禮直)이 고려 원종때 공을 세워 오천군에 봉해져 나주김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오천(연일)으로 하였다.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고려인종(仁宗:17대왕,재위:1122~1146)때 문림랑(文林郞:종9품 상(上)문관 품계)으로 예빈시승(禮賓寺丞 :빈객의 연향을 맡아보던 관청의 종6품)을 지내고 오천군(烏川君:오천은 영일 속면)에 봉해져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오천(연일(延日)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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