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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김씨(蔚山金氏)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경순왕(敬順王)과 죽방부인(竹方夫人) 박씨(朴氏) 소생의 제2왕자로 학성부원군(鶴城府院君)에 봉작(封爵)되고, 학성(鶴城, 현 울산광역시) 일대를 식읍(食邑)으로 받았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935년(신라 경순왕 9) 10월 경순왕(敬順王)이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高麗)에 양국(讓國)하려 하자 형인 태자(太子)와 함께 불가함을 극력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종묘(宗廟)에 곡(哭)을 하고 처자(妻子)를 버리고, 태자(太子)를 따라 개골산(皆骨山)에 들어갔다가 이후 화엄종(華嚴宗)에 귀의(歸依)하여 법수사(法水寺)에 머물면서 해인사(海印寺)에도 드나들면서 일생을 마쳤다. 스스로 승명(僧名)을 범공(梵空)이라 하였다.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왕자의 신분으로 아버지 경순왕(敬順王)이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하려 하자 형인 태자(太子)와 함께 불가함을 극력 간(諫)하는 등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절조(節操)를 지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그의 14세손 김환(金環)이 고려조(高麗朝)에 출사하여 충숙왕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광록대부(光祿大夫) 영도첨의사(領都僉議事)에 오르고 학성군(鶴城君)에 재(再) 봉군(封君)되어 후손들이 학성(鶴城, 현 울산광역시)의 개칭인 울산(蔚山)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17세손 조선 개국 공신 김온(金穩)까지의 분파를 정확히 알 수가 없어 김온(金穩)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 17세손 김온(金穩)은 조선 왕조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으로 양주목사(楊州牧使) 흥려군(興麗君)이며, 태종(太宗)조 왕위계승 정쟁에 휘말려 화를 입자 배위(配位) 정부인(貞夫人) 여흥민씨(驪興閔氏)가 아들 3형제를 데리고 솔가(率家)하여 전라도 장성(長城)으로 낙담(落膽)하면서부터 장성(長城)을 새 본거지로 삼아 가문이 융성하였다. 가문의 대세는 산림(山林)에서 명리(名利)를 멀리하고 오로지 학문(學問)과 존심양성(存心養性)에 주력하였다. 그러면서도 나라가 어려운 고비마다 분기(奮起)하여 의(義)를 지키며 충절(忠節)을 다하였으니, 단종(端宗) 참변(慘變)의 계유정난(癸酉靖難), 임진왜란(壬辰倭亂), 병자호란(丙子胡亂), 한말(韓末) 국난(國難)에 의인(義人) 열사(烈士)가 무리지어 나왔다. 그러는 중에도 경세(經世)에 뜻하여 문·무과(文·武科) 급제자 및 음사(蔭仕) 또는 은일(隱逸)로 출사한 인사가 다수 나왔다. 특이할 일은 장성(長城)에 터를 잡은지 5대에 문묘(文廟) 배향(配享) 대현(大賢)이 나왔으니, 바로 그가 문정공(文正公)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이다. 그리하여 호남(湖南)에서는 예로부터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울산김씨(蔚山金氏) 집안를 '울김(蔚金)'이라 부르며 명족(名族)으로 꼽는다. 김인후(金麟厚) : 조선 중기 문신으로 호(號) 하서(河西), 시호(諡號) 문정공(文正公), 문묘(文廟) 배향(配享), 필암서원(筆巖書院)·영귀서원(詠歸書院) 제향(祭享), 저서 하서집(河西集)·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서명사천도(西銘四天圖)·백련초해(百聯抄解) 등, 그는 평생에 걸쳐 인종(仁宗)에 대한 절의(節義)와 출처(出處)의 올바름으로 후대 사림(士林)들로부터 추앙(推仰)을 받았으며, 학문의 조예(造詣)가 초절(超絶)하고 기상(氣像)이 호매(豪邁)하여 학자 군주인 정조 대왕(正祖大王)으로부터 조선(朝鮮) 개국 이래 『도학(道學)과 절의(節義)와 문장(文章)을 모두 갖춘 이는 오직 하서(河西) 한 사람 뿐』 이라며 높이 평가를 받음. 김남중(金南重)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광국원종공신(光國原從功臣)이며, 임진왜란 때 종군함, 장성 회계사에 제향 김기하(金器夏)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호(號) 각재(覺齋), 우암 송시열 제자이며, 승정원 좌승지에 증직, 각재유고(覺齋遺稿)가 있으며, 장성 연호사에 제향 김시서(金時瑞)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호(號) 자연당(自然堂), 우암 송시열 문인이며, 순창 훈몽재 강학당을 수축하였다. 순창 화산사·어암서원에 제향 김희서(金羲瑞)는 조선 후기 유학자로 호(號) 환암(喚菴), 삼연 김창흡 문인이며, 환암 유고(喚菴 遺稿)가 있다. 장성 학림사에 제향 김녹휴(金祿休)는 조선 후기 유학자로 호(號) 신호(莘湖), 노사 기정진 제자이며, 신호집(莘湖集) 있다. 장성 고산서원에 제향 김익중(金翼中, 1851-1907) : 조선말 의병장으로 호(號) 녹동(鹿洞), 고종(高宗) 강제 퇴위·군대 해산·을사조약 체결 등에 격분 1907년 성재(省齋) 기삼연(奇參衍)과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여 장성·영광 등지에서 순사주재소, 일진회(一進會) 사무소 등을 습격하고, 그해 9월 전북 고창 문수사(文殊寺)에서 야습해온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북문루(北門樓)에서 전사함. 건국포장, 애국장이 추서됨, 전북 진안(鎭安) 이산묘(?山廟)에 제향 근·현대 주요 인물로는 근대사의 거목 고려대학교·경성방직·동아일보 창설자이자 제2대 대한민국 부통령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영원한 법조인의 사표 일제강점기 인권변호사·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 삼양사 그룹 창설자 수당(秀堂) 김연수(金秊洙)·김상홍(金相鴻) 家, 동아일보 회장 일민(一民) 김상만(金相万)·화정(化汀) 김병관(金炳琯) 家, 한국 지성의 거목 문교부 장관·고려대학교 총장·대한민국 국무총리를 역임한 남재(南齋) 김상협(金相浹),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종인(金鍾仁), 전 고려대 총장 김병철(金炳哲) 등이 있다. 2000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울산김씨는 11,270가구에 총 36,225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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