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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하는 명문 정승보다 대제학 영남 독립지사의 대부분이 의성김문대제학 김안국,동몽선습.모재가훈 등 많은 저서(著書) 남겨동생 김정국은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글을 읽고 호당(湖堂)에 뽑힌 수재'북천가'의 저자 김진형은 국문학사상에 중요한 업적 남겨의성김씨(義城金氏)는 경순왕의 다섯째 아들인 김석(金錫)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시조 김석(金錫)은 고려 태조 왕건의 외손(外孫)으로,왕건의 딸 신란공주(일명 낙랑공주)가 어머니이다. 신란공주(神鸞公主)는 왕건의 셋째부인 신명태후(神明太后)충주유씨(忠州劉氏)의 소생이다. 이로써 고려 왕건 태조의 외손이며 2대 혜종(惠宗),3대 정종(定宗),4대 광종(光宗)의 생질(甥姪)이다. 시조 김석은 고려 초 무신(武臣)정치시대에서 벗어나 널리 인재를 등용하는 문치(文治)시대로의 전환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국방(國防)과 백성들의 구휼(救恤)에 공을 세워 경종때 식읍(食邑나라에 공을세운 사람에게 고을의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게 하는것)300호를 하사 받고 의성군(義城君)에 수봉되었으며,제8대 현종때 덕유후(德儒侯)의 작위를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의성(義城)으로 삼았으며 그 뒤 여섯명의 선조들이 의성군(義城君)에 봉군(封君)되었다.한편,의성김씨족보에는 시조 김석(金錫)이 경순왕의 넷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등의 문헌(文獻)에 다섯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어,그동안의 통설에 따라 이책에서는 다섯째 아들로 기술한다.의성김씨(義城金氏)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96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33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시험)에 265명,역과(譯科:조선시대의 잡과의 하나로 중국어.몽고어.일본어.여진어 능통한 사람을 역관(譯官)으로 뽑아 쓰기 위하여 보이던 과거)에 4명,의과에 9명,율과(律科:조선시대에 형률에 능통한 사람을 등용하던 잡과(雜科)의 한 가지)에 3명 등 410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의성김씨(義城金氏)는 1985년에는 53,633가구 219,947명이었으며,2000년에는 79,360여가구 253,300여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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