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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과거시험때 문과에 19명 무과에는 45명 급제자 배출입북중시조 김 경(金敬)의 후손들이 함경도 지방에서 크게 성족(盛族)이뤄전주김씨(全州金氏) 시조 김태서(金台瑞. ~1257년 6월 시호는 문장 文莊)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 김은열의 8세손이다.전주김씨는 원래 경주김씨와 같은 뿌리이다. 시조 김태서는 고려 명종 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1232년(고종 19) 한림학사(翰林學士:고려때 문신가운데 뽑힌 뛰어난 학자로 한림원.수문전 등의 종3품.정4품)를 거쳐 추밀원부사(樞密院府事:정령을 출납하던 추밀원의 정3품)와 상장군(上將軍정3품)에 올랐다.이어 이부상서(吏部尙書:정3품장관)를 지내고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정2품 부총리)에 올라 명성을 떨쳤다.김태서는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고려때 경연과 장서를 맡아보던 관아 대제학은 종2품문형)등의 벼슬을 명종 신종 희종 강종 고종 등 5대에 걸쳐 역임하였으며, 전주군(全州君,완산)에 추봉하였기에 후손들이 본관을 전주로 하였다.1254년(고종 41) 식읍(食邑:나라에 공이 많은 사람에게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게 한 고을)인 경주가 몽고군의 병화(兵火)로 폐허가 되자,김태서는 셋째아들이 전라도지휘사(指揮使:고려때 지방장관)로 있을때의 연고지인 전주로 이주했으며 전주에서 여생을 마쳤다.전주김씨(全州金氏)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19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45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65명,역과(譯科:잡과의 하나로 중국어.몽공어.일본어.여진어에 능통한 사람을 역관으로 뽑아 쓰기 위하여 보이던 과거)에 5명, 의과에 8명, 음양과(陰陽科:천문.지리.명과학에 밝은 사람을 등용하던 과거)에 1명,율과(律科:형률에 능통한 사람을 등용하던 잡과의 한가지)에 8명,주학에 9명 등 160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북한의 통일신보에 따르면 북한의 김일성 주석 가문은 조상 대대로 전주에 살다가, 김일성주석의 아버지 김형직(金亨稷)때 북한지역으로 이주했다.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전주김씨(全州金氏) 시조 문장공(文莊公) 김태서의 33세손이다. 시조 문장공 김태서의 묘는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모악산 기슭에 있으며, 매년 양력 10월1일 향사(제사)한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전주김씨(全州金氏)는 2000년에는 18,126가구에 57,979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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