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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이씨는 우리나라 이씨(李氏)의 대종(大宗)이다. 익재 이제현, 백사 이항복, 충무공 이수일, 매죽헌 이완 대장 등 우수한 인물을 배출한 삼한갑족(三韓甲族)이다. 경주이씨(慶州李氏)는 박혁거세 탄생설화에 나오는 초기 신라의 6촌장 중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의 촌장 이알평(李謁平)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조 알평(자는 천서天瑞, 호는 표암瓢巖, 시호는 문선文宣, 은렬왕恩烈王에 추봉)은 진한(辰韓) 6촌장의 한 분으로 기원전 57년, 다른 5촌장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 왕으로 추대하였다. 표암공(瓢巖公)이라는 호칭은 시조 알평이 경주의 “표암(瓢巖)- 박바위에 강림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시조 알평(謁平)은 역사서와 세전(世典)에 의하면 “기원전 117년에 진한 땅 표암봉에 하강하였으며, 양산촌 촌장으로 부족민을 다스리고 6촌장의 수장으로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주재하였으며 박혁거세를 봉양하여 왕으로 추대한 신라건국 좌명공신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박혁거세가 왕이 된 후,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양산촌(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개칭할 때 이씨 성(李氏姓)을 사성(賜姓)받았다. 시조 이알평은 서기 526년 법흥왕 23년에는 문선(文宣) 시호(謚號)를 받았고 서기 739년 무렬왕 3년에는 은렬왕(恩烈王)으로 추봉되었다. 서기1806년(순조 6)에 신라를 건국하고 박혁거세왕을 추대한 사실(史實)을 새긴 유허비를 소금강산 표암봉(瓢巖峰)에 세웠으며, 1925년 표암재(瓢巖齋)를 건립하였고, 1971년에 알평시조의 묘우(廟宇)인 악강묘(嶽降廟)가 국고지원으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시조 이후의 계대(系代)가 전해지지 않았으나 후손들이 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지은 중조 17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묘지(墓誌)에서 시조이후 최초의 경주이씨로 밝혀진 시조의 원대손(遠代孫)인 신라 말 소판(蘇判) 벼슬을 지낸 진골(眞骨) 출신의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받들고 1세로 기세(起世)하고 있다. 경주이씨(慶州李氏)의 본관은 시조의 발상지 양산촌(楊山村)이다. 고려 초 경주(慶州)로 지명이 바뀌어 경주이씨로 하였고, 신라 때 경주의 옛 지명이 월성(月城)이라고도 하였기에 고풍스럽게 월성이씨(月城李氏)라고도 한다. 경주이씨(慶州李氏)는 우리나라 이씨(李氏)의 정통파 대종(大宗)으로 내세우는데, 이씨 중에는 시조(휘 알평)에 뿌리를 두고 분적이 확인된 분적종은 ‘시조 후손’에서 합천이씨(陜川李氏). 차성이씨(車城李氏). 우계이씨(羽溪李氏) 등 3본의 분적종이 있고 ‘중시조 후손’에서 분적한 분적종은 원주이씨(原州李氏). 아산이씨(牙山李氏). 재령이씨(載寧李侍). 진주이씨(晋州李氏. 장수이씨(長水李氏) 등 5본의 분적종 등 현재 총 8본의 분적종이 있다. 자세히 말하면, 경주이씨 분적도(分籍圖)에는 8본의 분적종(分籍宗) 중 합천이씨(陜川李氏- 강양군 이개 江陽君 李開). 차성이씨(車城李氏- 차성군 이개 車城君 李渭). 우계이씨(羽溪李氏- 좌복야공 이양식 左僕射公 李陽植)등 3개 분적종은 ‘시조후손’에서 분적 되었고, 나머지 재령이씨(載寧李氏- 재령군 이우칭 載寧君 李禹?). 아산이씨(牙山李氏- 증사공공 이주좌 贈司空公 李周佐). 진주이씨(晋州李氏- 대제학공 이영재 大提學公 李永?. 벽호공 이군재 碧湖公 李君? 형제). 원주이씨(原州李氏- 경원군 이반계 慶原君 李攀桂). 장수이씨(長水李氏- 李直幹) 등 5개 분적종은 중시조 아랫대에서 분적(分籍)되었다. 1세 중시조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은 시조 이알평의 원대손으로 중시조로부터 현재 ‘희(熙)’항렬까지는 40세(=40대)이고 시조로부터는 약 2000년이 된다. 경주이씨의 세계(世系)는 1세 조상인 이거명의 15세~21세에서 크게 14개 대파로 나누어지고, 다시 후대로 내려오면서 중, 소 약 80여개 파로 분파된다. 중시조 본손 계통 8대파는 평리성암공파(評理誠菴公派- 이인정李仁挺). 이암공파(怡庵公派- 이관李琯). 익재공파(益齋公派- 이제현李齊賢). 호군공파(護軍公派- 이지정李之正). 국당공파(菊堂公派- 이천李?). 부정공파(副正公派- 李邁). 상서공파(尙書公派- 李?). 사인공파(舍人公派- 이조 李?) 등이고 지손 계통 6대파는 판전공파(判典公派- 이강李康+羽). 월성군파(月城君派- 이지수李之秀). 직장공파(直長公派- 이양오李養吾). 석탄공파(石灘公派- 이존오李存吾). 진사공파(進士公派- 이존중李存中). 교감공파(校勘公派- 이존사李存斯) 등으로 총 14개대파로 분파된다. 경주이씨는 1684년(숙종10)에 갑자보(甲子譜)를 발간했으며,1748년(영조24)에는 무진보(戊辰譜), 1814년(순조14)에는 갑술보(甲戌譜), 1873년(고종10)에는 계유보(癸酉譜), 1890년(고종27)에는 경인보(庚寅譜)를 발간하였으며, 1987년 정묘보(丁卯譜)는 중앙화수회에서 주관하여 경주이씨 대종보를 발간했다. 전통의 명문거족인 경주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으며, 조선시대에도 수많은 공신과 학자. 명신을 배출하여 명문의 대를 이었다. 인물 중에는 상서공파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백사(白沙)집’이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익재공파는 화곡(華谷) 이경억(李慶億)의 ‘화곡(華谷)집’이 두드러지며, 국당공파는 매죽헌(梅竹軒) 이완(李浣)의 ‘매죽헌(梅竹軒)집’등이 문형(文衡. 대제학)과 정승(政丞)을 배출하였다. 자세히 말하면 상서공파(尙書公派)는 ‘오신(五臣)집’의 ‘백사(白沙)집’에서 영의정(領議政) 4명. 좌의정(左議政) 2명. 대제학(大提學) 2명이 나왔고 익재공파(益齋公派)는 ‘8별(八鼈)집’의 ‘화곡(華谷)집’에서 좌의정과 대제학 각 1명이 나왔고, 국당공파(菊堂公派)는 ‘8정(八廷)집’이 유명하고 계대가 다른 ‘매죽헌(梅竹軒)집’에서 좌의정(左議政) 1명이 나와 이들 3파가 사실상 경주이씨의 주축을 이룬다. 고려 말의 대학자이자, 문장가이며 외교가이며 충신이기도 했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은 고려 때 경주이씨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충렬왕부터 공민왕까지 일곱 임금을 모시고 많은 공적을 남겼으며 성리학자. 정치가. 외교가. 문장가. 시인. 사가이었다. 조선시대에는 8형제가 모두 뛰어나 '8문장'으로 꼽히는 박팽년의 사위인 이공린(李公麟)의 아들들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 류성룡을 도와 병참책임을 맡아 큰 역할을 한 이시발(李時發)을 비롯하여,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유명한 오성대감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5차례나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하여 국난을 수습하였으며, 임란 후 정승(政丞)에 올라 당쟁을 막는데 힘쓴 조선시대 '4대 명재상'의 한 사람으로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경주이씨 중앙화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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