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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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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김씨의 시조 김덕린(金德麟)은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전한다.시조 김덕린은 천안태수(太守:으뜸 벼슬로 신라때의 위계는 중아찬에서 사지(舍知)까지임)를 지냈으나 문헌을 잃어 전후세계를 알 수 없다.한편 축산김씨(竺山金氏)시조 김덕린은 김세중(金世重)의 아들로 1733년(영조9)식년문과(式年文科:식년마다보던 정기 과거시험.동당)에 병과로 급제하여 직강(直講:성균관의 정5품)을 지냈는데, 국조방목(國朝榜目)에 그의 본관이 축산(竺山:용궁의 옛이름)이고 세거지가 용궁(龍宮)으로 되어있어 전후자의 천안과 축산은 동원이며 같은 인물이라고 한다.이 외에도 좌우위력장군(左右衛力將軍:4품) 김윤명(金允明)을 시조로 받드는 문헌도 있다.문헌에 천안으로 관적한 사람으로는 1801년(순조1) 식년문과(式年文科:3년마다 보던 정기시험으로 대과)에 급제한 김광정(金光鼎)이 있는데 세거지는 영암으로 되어있다.서기 1869년경 동산에 살던 천안김씨 김덕순이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유송리(수항도)를 지나다 살기 좋은 곳이라 정착하여 10여년 살다가 대유마을로 이주한 기록이 있다.조선시대에 천안김씨(天安金氏)는 문과(文科:대과)에 1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2명 등 3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천안(天安)은 충청남도 천안(天安)으로 1895년(고종32)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公州府)천안군이 되었고,1914년 군면폐합으로 목천군.병천군을 합하여 천안군이라 불렀고, 1963년 천안읍과 환성면이 합쳐져 천안시로 분리되었다. 1995년 천안군이 천안시로 통합되었다.천안김씨는 인구조사에서 2000년에는 총 442가구에 1,494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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