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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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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간의 우애를 논할 때는 청도김씨<봉.난.귀>조선조의 인문학자 예술가 과학자로 평가 받는 대동여지도의 고산자 김정호청도김씨(淸道金氏)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8세손인 김지대(金之垈:1190~1266,초명은 중용 仲龍,시호는 영헌 英憲)를 시조로 받든다.시조 김지대는 서기 1190년(고려 19대 명종 20)에 시중(侍中:백관을 총찰하고 서정을 총리한 종1품)을 지낸 김여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청도김씨 족보에 의하면 시조 김지대(金之垈)는 풍채가 좋았으며 시(詩)와 문장에 능하였다고 한다.그는 고려 고종과 원종대의 명신으로 1218년(고종 5) 거란족이 쳐들어왔을 때, 방패머리에 충효쌍수(忠孝雙修)라는 순두시(楯頭詩)를 써넣고, 29세의 나이로 원수(元帥:총사령관.전시의 임시벼슬) 조충(趙沖)을 따라 출정하여 큰 공을 세우고 이듬해 3월에 개선하였다.전장에서 돌아와 바로 5월에 문과(文科:대과)에 장원급제하고, 전주사록(全州司錄)에 보임 받았으며, 이어 보문각 교감(寶文閣:고려 때 경연과 장서를 맡아보던 관아의 벼슬).진주목사(牧使:정3품 수령)를 지냈다.김지대는 1240년(고종 27)에 전라도안찰사(지방장관으로 정3품 안렴사.절도사)로 선정을 베풀었다.이어 비서소감(秘書少監).지공거(知貢擧:과거시험을 관장하던 주 시험관 학사가 겸임함).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왕명을 출납하던 추밀원의 정3품)를 거쳐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종2품)에 올랐다.서기 1258년(고종 45) 북변에 침입한 몽고군을 격퇴하였으며, 민심을 추스려 서북 40여 성(城)을 안정시킨 공훈으로 오산군(鰲山君:오산은 청도의 옛 이름)에 봉해졌다.원종이 즉위한 후 이부상서(吏部尙書:정3품 장관)를 거쳐 정당문학(政堂文學:종2품 재신)을 지내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종2품품계로 후에 광정대부로 바뀜)로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중서문하성의 정2품 부총리)에 이르렀다.후손들은 봉군지인 청도(淸道)를 관향으로 삼고 그곳에 살면서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명문(名門)의 가통을 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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