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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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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어난 명현과 충신. 대동법의 실시 3대 정승.부자(父子) 영의정 배출 화려한 명문기묘명현 김식,실학에 바탕한 경제학의 선구적 역할한 영의정 김육(金堉)청풍(淸風)은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던 옛 지명(地名)으로,신라 경덕왕 때 청풍(淸風)으로 고쳤다.1018년(현종9) 충주에 속하였다가, 조선현종 때 왕비의 관향지라 하여 도호부(都護府)를 설치하였으며,1895년(고종32)청풍군이 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제천군에 병합시켜 읍내면이라 하였다가,1917년 청풍면이 되었다.조선조에서 명문(名門)으로 일컬어진 청풍김씨(淸風金氏)는 신라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인 신라 경순왕의 첫째 아들 마의태자 김일(金鎰)의 둘째 아들 대장군(大將軍:종3품) 김순웅(金順雄)의 12세손인 김대유(金大猷)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한편 다른 문헌에는 시조 김대유가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첫째 아들인 김정구의 17세손 이라고도 한다.김대유(金大猷)는 고려 말에 문하시중(門下侍中: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한 종1품 정승)을 지내고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청성은 청풍의 별호)에 추봉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은 관향을 청풍(淸風)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며,빼어난 명현(名賢)과 충신(忠臣)을 많이 배출시켜 명문(名門)의 지위를 지켰다.특히 청풍김씨는 조선시대에 상신(相臣:영의정·좌의정·우의정 등 정1품 정승)을 8명, 대제학(大提學:홍문관·예문관의 정2품문형) 3명, 왕비(王妃) 2명이 배출되어 <3대 정승>과 부자영상(父子領相)을 배출하여 청송심씨(靑松沈氏),대구서씨(大邱徐氏)와 함께 상신(相臣) 3명문(三名門)으로 명성을 떨쳤다.1985년 인구조사에서 청풍김씨(淸風金氏)는 총 20,189가구에, 82,882명이었으며,2000년에는 총 29,527가구에 94,468명이었다.청풍김씨 주세거지는 충북의 충주.청원,전북 익산, 전남 장흥,경북 상주,황해도 해주, 경기 포천등지이다. 시조 묘는 충북 제천시 수산면 도전리에 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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